13장. 웃는 얼굴 뒤에 숨은 그림자

팔자

by 아르칸테

영란은 무너지지 않았다. 아무리 이진철이라는 남자가 속을 비틀고 눈물을 짜내게 해도,


이제 그녀는 운명에만 끌려가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전략을 짜고 움직이며, 자신과 아이들을 위한 다음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즈음,


영란은 자주 김말숙의 집에 들르곤 했다.


김말숙은 자식들의 학교에서 알게 된 인물이다. 거기에는 왕혜옥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김말숙은 인생을 탓하기 바쁘고 , 사람들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기 일쑤였다.


그래서 영란은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탓할 시간에 현실을 살아라,


김말숙은 자신의 인생을 탓할 때마다 영란의 앞에서는 늘 제지당하던 여자였다.


입만 열면 자화자찬과 무리수의 끝판왕 같았지만, 영란은 그녀를 혼내고 말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날도 김말숙의 집에 들렀을 때, 거기 앉아있던 사내가 있었다. 낯설지만 어딘가 눈빛이 낯익었다. 김말숙이 말했다.


"언니… 우리 성문이야. 내 동생. 언니 큰언니네 미용실 갔을 때 봤다면서."



김성문. 그는 미용실에서 영란을 처음 본 순간부터 1년 동안 영란을 조용히 짝사랑했다.


아무 말도 없이, 멀리서. 그러다


영란과 이진철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내 움직였다. 어느 날, 그가 직접 찾아와 말했다.



“누나, 저… 진짜 오래 기다렸어요. 정말 좋아해요. 만나주세요.”



영란은 처음엔 단칼에 말했다.


"내 말 잘 들을 거 아니면 시작하지도 마." 김성문은 "알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단지 말이 아니었다. 그는 매일같이 찾아왔고,


매일 영란 앞에서 울기도 하고.


이진철의 남아있는 괴롭힘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하고,


심지어 어느 날은 그녀를 자기 어머니의 산소에 데려갔다.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말했다.


"어머니… 이 사람이랑 결혼하게 해 주세요. 제가 잘 살게요… 정말입니다."


영란은 그 모습에 마음 한편이 흔들렸다.


그가 아이들 앞에서도 공손했고, 진심이 보였고, 그렇게 마시던 술도 마시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도 허락을 구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이 남자에게,


그녀는 결국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그렇게 김성문은 가족이 되었다. 그의 두 아들까지 포함해 다시 8 식구가 모였다.


처음엔 참 따뜻했다. 성실했고, 성격도 유했으며, 말도 잘 들었다.


영란은 이런 사람이라면 함께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란은 이제는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한 번쯤은 반짝인다.


그러나 진짜는, 끝까지 보는 것이다.



김성문은 혼자 사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자유롭게 살았고, 자기 리듬이 있었다. 영란의 규칙과 책임, 의리와 정의가 그에겐 점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웃는 얼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술의 기운이 그의 그림자에 다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사람은 술이 문제 였다. 그놈의 술


영란은 술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혔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 얼음이 잔 안에서 구르는 소리, 푸르스름한 병의 윤광조차 혐오스러웠다.


그건 단지 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의 기억 깊숙한 골목 어딘가, 술은 언제나 폭력의 냄새를 풍겼다.


문이 깨지고, 그릇이 날아가고, 사람의 눈이 짐승처럼 변하는 그 찰나—


항상 술이 있었다.


그렇게


그 시절, 그사람과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인연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