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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위 악마 바틴

악마와 철학자의 법정

by 아르칸테

제18위 악마 바틴 – 방황하는 욕망

죄명: 끝없는 방황으로 욕망을 탕진한 죄


[악마 소개]
바틴.
옛 기록에 따르면 그는 뱀의 꼬리를 가진 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약초와 보석의 지식을 전해주고 인간을 먼 길로 인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진짜 능력은 길을 잃게 하는 것이다. 그는 욕망을 쫓는 자들을 이리저리 떠돌게 하여, 끝내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좇는 눈빛이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방향의 나침반이다. 그것은 그의 끝없는 방황을 멈추게 하고, 욕망을 자리 잡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 그는 피고석에 앉았다.


[법정 심문]

철학자(아르칸테): 피고, 네 이름과 죄를 말하라.

바틴: 나는 바틴. 나는 사람들을 길로 이끌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새로운 곳을 탐험했고, 더 많은 것을 원하며 전진했다. 나는 그들의 욕망을 풍요롭게 했다. 그것이 어찌 죄인가.

철학자: 네 죄명은 방황하는 욕망이다. 너는 목적 없는 길로 사람들을 몰아넣었다. 끝없는 탐닉은 풍요가 아니라 허무였다.

바틴: (비웃으며) 욕망은 멈추는 순간 썩는다. 나는 그들을 정지에서 구했다. 방황은 곧 자유다.

철학자: 아니다. 방황은 자유가 아니라 소모다. 욕망이 방향을 잃는 순간, 존재는 흩어지고 공허해진다. 네가 만든 길은 자유로운 길이 아니라 미로였다.

바틴: 그러나 그들은 원했다. 새로운 자극, 새로운 길, 끝없는 움직임을. 나는 그저 욕망을 따라 인도했을 뿐이다.

철학자: 원한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 욕망이 길이 될 수는 없다. 욕망은 이끌어야 할 대상이지, 따를 주인이 아니다. 네가 그들을 이끈 것이 아니라, 욕망이 너를 끌어 방황하게 했다.

철학자의 말이 끝나자,
바틴의 눈빛이 서서히 뒤집혔다.
그 안에서 흔들리던 욕망의 잔불이 일순간 타올랐다.
그는 마치 욕망이 곧 진리라 믿는 자,
욕망이 손가락을 끄는 대로 움직이는 광신도처럼 웃었다.

바틴:

“하하… 결국 너도 같은 말을 하는군.
욕망은 뒤따르면 안 되고,
통제해야 하고,
길을 찾아야 한다고?”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뱀 꼬리가 바닥을 휘저으며 끔찍한 마찰음을 냈다.

바틴:
“왜 그래야 하지?
욕망이 이득이 된다면,
잠시 만족을 준다면,
나를 기쁘게 한다면
이리저리 헤매도 되는 것 아닌가?
길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만들다 지치면 또 버리면 되지!”

그는 점점 더 흥분해 갔다.
이제 그는 논리도 이성도 아닌,
욕망 자체가 된 듯한 존재였다.

철학자:

“욕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너를 끌고 다니는구나.”

바틴은 더 크게 소리쳤다.

바틴:

“그래! 뭐가 문제지?
욕망이 나를 끌든, 내가 욕망을 끌든
결국 움직이면 되는 거다!
정지해 있는 인간은 죽은 인간이다!
갈피를 못 잡아도, 길을 잃어도…
그 순간 즐거우면 그게 삶이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웃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음성이 튀어나왔다.

바틴:

“이득이 된다면,
쾌락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나를 살아있게 느끼게 한다면
왜 멈춰야 하지?!
길을 잃어도 좋다!
길이 백 개라도 좋다!
다 쓸모없어도 상관없다!
그 순간 나는… ‘살아있다’고 느끼니까!”

그의 뱀 꼬리는 미친 듯 흔들렸고,
발자국은 겹치고 겹쳐 미로처럼 바닥에 그려졌다.
그는 스스로 방황의 패턴을 만들며,
그 안에서 도취되어 있었다.

철학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이 악마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다.

철학자(아르칸테):

“바틴, 너는 욕망에 취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길을 잃는 과정 자체를 술처럼 들이켜며 살아온 자구나.
너에게는 목적이 없고, 의미도 없다.
남는 것은 소모뿐이다.”

바틴은 그 말에 발작하듯 웃었다.

바틴:

“목적? 의미?
그딴 건 욕망을 죽이려는 족쇄다!
나는 방황하면서 흩어지는 게 좋다!
오늘 이걸 원했다가 내일 저걸 원하는 것도 좋다!
방향이 바뀌면? 그냥 바꾸면 된다!
이득이 된다면 뭐든지 된다!
그게 욕망의 신성함이다… 하하하하!”

그의 웃음은 벽을 타고 퍼졌다.
바닥에 비친 그의 그림자는
수십 갈래의 길처럼 뻗어나가며 뒤틀리고 있었다.


[심판]
철학자는 방향의 나침반을 꺼내 바틴 앞에 세웠다.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다 한 방향을 가리켰다.

철학자: 바틴, 이 나침반은 방황을 멈추고 길을 바로잡는다. 너의 욕망은 어디에도 닿지 못했으나, 이 바늘은 진실을 가리킨다.

나침반의 빛이 바틴의 몸을 꿰뚫자, 그의 뱀 꼬리는 갈라지고, 끝없이 흔들리던 발걸음이 멈췄다.
그의 몸에서 흩어져 나온 수많은 길의 환영이 사라지며, 그를 가둔 방황은 끊어졌다.

철학자는 나침반을 바틴 앞에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직접 바틴의 눈높이에 들고,
악마가 도망칠 수 없도록 그 시선을 붙들었다.

나침반의 바늘이 떨림을 멈추는 순간,
철학자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낮고 단단해졌다.

철학자(아르칸테):

“바틴.
너는 욕망을 자유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자유는 방향 속에서만 존재한다.
방향 없는 욕망은 노예의 사슬일 뿐이다.”

바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의 뱀 꼬리는 본능적으로 달아나려 했지만,
나침반의 빛이 꼬리를 찢어내듯 갈라놓았다.

철학자:

“너는 사람들을 인도한 것이 아니다.
길을 보여주는 척하며,
실은 그들의 방황을 먹고 살았다.
그들이 목적을 잃을수록,
네 힘은 더 강해졌지.”

바틴은 몸부림쳤다.
그의 주변에서 수백 갈래의 환영 길들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막다른 길에서 사라졌다.

철학자는 그 환영들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철학자:

“욕망이 이끄는 방향은 단 하나다.
바로 소모와 공허다.
네가 만든 길들은 모두 목적이 없었고,
끝도 없었다.
너는 인간의 욕망을 키운 것이 아니라,
욕망이 인간을 잠식하도록 부추긴 죄인이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나침반의 바늘이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며 밝게 빛났다.

빛은 칼처럼 바틴의 가슴을 가르며 파고들었다.

바틴은 비명을 질렀다.

바틴:

“멈추지 마라!
욕망은 움직여야 살아!
방황이 나를 만든다!!”

철학자는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며,
마지막 일침을 날렸다.

철학자:

“아니다, 바틴.
방황은 너를 만든 것이 아니라,
너를 비워버린 것이다.
너는 욕망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
욕망에게 끌려 다닌 허깨비였다.”

그 말이 꽂히는 순간,
나침반의 빛이 폭발하며 바틴의 몸을 꿰뚫었다.

그의 뱀 꼬리는 완전히 갈라져 먼지처럼 흩어졌고,
그를 둘러싸던 수많은 길들의 환영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다.

바틴의 걸음은 완전히 멈췄다.
평생 처음으로
그는 아무것도 쫓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의 무릎이 법정 바닥에 부서지듯 떨어졌다.
방황의 형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철학자는 마지막으로 선언했다.

철학자:

“욕망은 길이 아니다.
욕망을 길로 삼는 자는
영원히 제자리에서 돌 뿐이다.
너의 심판은 끝났다, 바틴.”



[귀환]
흩어진 길 위에 남은 것은 한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는 땅에 주저앉아 낮게 말했다.
"나는 욕망을 좇다 끝없이 방황한 죄인이다. 이제는 방황이 아니라, 목적을 향해 걷겠다."


[교훈]
욕망은 방향을 잃는 순간 방황이 되고, 방황은 존재를 허무로 이끈다. 진정한 자유는 욕망이 아니라 목적 속에서 얻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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