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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위 악마 보티스

악마와 철학자의 법정

by 아르칸테

제17위 악마 보티스 – 오만한 자기 확신

죄명: 스스로를 절대 옳다 여기며 타인을 억눌린 죄

[악마 소개]
보티스.
옛 기록에 따르면 그는 거대한 이빨을 드러낸 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곧 인간의 얼굴로 바뀐다.
그의 능력은 ‘확신의 독’이다. 그는 자신의 말을 절대적 진리처럼 강요하고, 타인의 생각을 깔아뭉개며, 모든 대화를 독단으로 끝낸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굽히는 자들의 침묵이다.
그가 싫어하는 것은 교만의 철퇴다. 그것은 그의 확신을 짓눌러 산산조각 낸다.
오늘 그는 피고석에 앉았다.


[법정 심문]

철학자(아르칸테): 피고, 네 이름과 죄를 말하라.

보티스: 나는 보티스. 나는 옳았다. 언제나 옳았다. 나의 말은 틀린 적이 없다. 사람들은 나를 따르며, 나의 확신 속에서 안정을 얻었다. 나는 힘을 준 자다.

철학자: 네 죄명은 오만한 자기 확신이다. 네 확신은 진리가 아니라 독이었다. 너는 스스로의 오만을 절대적이라 부르며, 타인의 목소리를 짓밟았다.

보티스: (비웃으며) 그러나 확신 없는 세상은 혼란이다. 사람들은 나의 확신을 원했다. 나는 그들의 길잡이였다.

철학자: 아니다. 확신은 필요하지만, 의심 없는 확신은 교만이다. 진리는 확신에서 태어나지 않고, 끊임없는 검증과 겸손에서 자란다. 너의 확신은 길잡이가 아니라 족쇄였다.

보티스: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죄라면, 흔들리는 자들이야말로 죄인이다.

철학자: 흔들리지 않는 것이 힘이 아니라 교만이다. 네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버린 순간, 너는 이미 타락했다.

보티스:
“타락?
네가 감히 나를 타락이라 부른다고?”

그의 목소리는 인간의 것과 뱀의 것이 겹쳐 울렸다.
방청석의 불빛이 흔들리고, 보티스의 그림자는 거대한 뱀처럼 늘어났다.

보티스:
“나는 진리다!
나의 말은 틀린 적이 없다!
사람들은 나를 믿었고,
나는 그들을 올바르게 이끌었다!
그들이 길을 잃은 건,
나 아닌 다른 자들의 흔들림 때문이다!”

그는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확신이 아니라 확신에 대한 중독,
진리가 아니라 자기 우상의 숭배였다.

보티스:
“누가 나를 의심할 수 있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말은
세상이 틀렸다는 소리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변한 적이 없다!”

그의 목에서 뱀의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철학자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제 그는 보티스가 단순한 오만한 악마가 아니라,
자기확신이라는 종교의 사제가 되어버렸음을 보았다.

철학자(아르칸테):
“보티스, 너는 이제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숭배하고 있을 뿐이다.
확신이 아니라 우상이다.
그리고 우상은 반드시 무너진다.”

보티스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보티스:
“무너지는 건 약자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절대다!
나는”

그의 외침은 더 크게, 더 절박하게 변해갔다.
확신이 강해서가 아니라,
확신이 무너질까 두려워서 더욱 광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보티스:
“…나를 부정하지 마라.
나를 흔들지 마라.
나를… 무너뜨리지 마라…!”

그의 손이 떨리고, 얼굴은 인간과 뱀 사이에서 뒤틀렸다.
마치 ‘틀릴 수 있음’이라는 단어 하나가
그의 정신을 갈기갈기 찢는 것처럼.

철학자는 조용히 선언했다.

철학자:
“보티스, 너는 확신에 미친 것이다.
확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확신이 너를 삼킨 것이다.”

보티스는 절규했다.

보티스:
“나는… 옳다…!
그렇다고 말해줘!
누군가는… 맞다고 해줘야 해…!”

그의 확신은 힘이 아니라 구걸이 되어 있었다.
진리를 붙잡은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지탱하는 마지막 거짓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심판]
철학자는 교만의 철퇴를 높이 들었다.
묵직한 철퇴는 확신의 껍데기를 부수는 도구였다.

철학자: 보티스, 이 철퇴는 네 확신의 교만을 부숴버릴 것이다. 진리는 겸손 속에서만 남는다.

철퇴가 내리꽂히자, 보티스의 몸에서 독기가 터져 나왔다.
거대한 뱀의 형상이 갈라지고, 그의 얼굴에 드리운 오만이 산산조각 났다.
그가 움켜쥐던 확신의 외침은 무너지고, 그의 목소리는 침묵 속으로 꺼졌다.

보티스:
“안 돼…!
나는 옳아야 한다…!
틀릴 수 없어…!
틀리는 순간 나는 사라진다!!!”

그는 철퇴에 맞아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의 몸을 움켜쥐고,
자기 확신을 붙잡기 위해 발광하듯 몸부림쳤다.

그의 피부 아래에서 무수한 뱀의 비늘이 돋아나며
뒤틀린 얼굴 위로‘나는 옳다’는 문장들이
살갗처럼 떠올랐다가 금세 갈라져 피처럼 흘러내렸다.

보티스:
“틀리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틀릴 수 없다…!!!
내가 무너지면… 진리도 무너진다!!!”

그것은 논리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마지막 광기였다.

보티스는 바닥을 기며 외쳤다.

보티스:
“누구든 말해줘…
내가 맞다고…
내가 옳다고…
그래야만 내가 살아!”

그러나 법정은 침묵했다.

그 침묵은 보티스에게
어떤 철퇴보다 잔혹한 심판이었다.

그는 더 큰 비명을 질렀다.
확신이 아니라 확신의 붕괴가 그를 찢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뱀의 형상이 그의 등 뒤에서 솟구쳤고,
그 뱀은 보티스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마치 우상숭배자가 자기 신에게 희생되는 것처럼
그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보티스:
“확신이… 나를… 지켜줘야… 하는데…
왜… 나를… 먹어치우지…?”

철학자는 차갑게 응시했다.

철학자(아르칸테):
“확신은 너를 지켜준 적이 없다.
너는 확신을 지키기 위해 너 자신을 버렸다.
이제 그 우상이 너를 삼킬 뿐이다.”

보티스의 확신은
그가 만들어낸 갑옷이 아니라,
그를 갉아먹는 굶주린 형틀이었다.

뱀은 결국 그의 몸을 완전히 감아올렸고,
보티스는 마지막으로, 거의 속삭임처럼 말했다.

보티스:
“…나는… 옳아야 했을 뿐인데…”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뱀의 형상은 산산히 무너져,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 먼지 속에는
한 인간의 실루엣만이 남아 있었다.
확신이 사라지자 비로소 남은,
두려움과 결핍으로 이루어진 작은 인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틀릴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인정이야말로,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가장 인간적인 말이었다.


[귀환]
철퇴의 파편 속에서 한 인간이 무릎 꿇고 있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의 확신을 절대라 믿은 죄인이다. 이제는 확신이 아니라 의심과 겸손으로 길을 찾겠다."


[교훈]
확신은 힘이 될 수 있으나, 의심 없는 확신은 교만이다.

진리는 절대가 아니라 겸손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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