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나는 무엇을 몰랐을까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책가방을 내려두자마자 조용히 바닥에 앉았다.
방 안은 고요했고,
오늘 하루의 말들이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는… 왜 그날 라면을 집어 들었을까?”
그 질문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대신 답해주는 것도 아닌,
아이 자신의 목소리였다.
처음엔
어른들의 말이 하나씩 떠올랐다.
— “도둑질이지.”
— “결핍의 행동이다.”
— “심리적 상처에서 비롯된 거야.”
— “발달이 덜 돼서 그런 거야.”
— “가정환경의 문제일 수 있어.”
아이는 그 말들을
마치 종이 조각처럼 하나씩 펼쳐보았다.
그리고 하나씩 접어
옆으로 놓기 시작했다.
“이건… 아저씨가 말한 거지.”
“이건… 신부님이 한 말.”
“이건… 심리 선생님의 말.”
“이건… 아빠 친구 아저씨의 해석.”
그 말들은 모두
아이를 향하고 있었지만
아이의 마음에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아이는 조용히 무릎을 감싸안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날의 순간을
다시 천천히 떠올렸다.
가게.
배 속의 허전함.
손끝의 망설임.
아무도 없는 골목.
라면 봉지의 따뜻한 색.
그리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끌림’.
아이는 아주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날의 나는…
정말로 내 마음을 모르고 있었구나.”
라면을 집어 들 때
아이는 ‘훔친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었다.
심리학 책의 용어도 아니고,
종교의 죄 개념도 아니었다.
그건 단지
아이의 마음이 그 순간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나는 배가 고팠지만,
그걸 말할 줄 몰랐고…
부끄러웠고…
누가 나를 도와줄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어.’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그때,
‘말하는 법’을 몰랐던 거야.”
배고픔을 말로 꺼내는 법.
도움을 요청하는 법.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는 법.
자기 마음을 제대로 보는 법.
그 모든 걸
아이는 아직 배우지 못했었다.
그래서 손이 먼저 움직였고,
마음은 늦게 따라왔다.
라면은
도둑질의 증거가 아니라,
‘말하지 못한 마음’이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튀어나온
조그마한 신호였던 것이다.
아이는 종이를 꺼내 조용히 적었다.
“라면은
나쁜 마음이 아니라
모르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또 하나의 문장을 적었다.
“나는 그날,
내 마음을 설명하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었다.”
아이의 손끝이 아주 천천히 멈췄다.
그 표정은
누군가에게 변명하는 얼굴이 아니라,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오늘, 아이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자신을 해석해냈다.
그 작은 한 문장이
아이가 앞으로 그릴
‘자기 지도’의 첫 좌표가 되었다.
아이는 작은 탁자 앞에 앉아
창밖으로 천천히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배운 것들이
서서히 마음속에 불을 켜는 듯했다.
아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른 말들을 했지만
그 말들이 하나로 이어지자
아이의 마음속엔
마치 조각난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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