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관계란

이상한 골목 상인

by 아르칸테

10장.관계란


등 뒤에서 상인이 조용히 물었다.

“왜 그러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아저씨…관계가… 뭐예요.”

상인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나는 숨을 들이쉬고 쏟아냈다.

“왜 이렇게… 힘든 거예요?
왜 사람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상처 주고, 도망가고, 오해하고… 왜 이게 이렇게 어려워요?”

말이 빠르게 엉켰다.

“전 그냥…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고
그냥 같이 있고 싶었어요.
근데 말 한마디가…왜 이렇게 크게 부서지는지 모르겠어요.”

내 말이 끝나자
상인은 테이블 위에 뒀던 작은 동그란 금속 조각 하나를 손가락으로 굴리며 말했다.

“준호야,
인간관계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구조물’이야.”

“구조물…?”

“그래. 말, 감정, 기억, 불안, 경험.
이 다섯 가지가 매번 조금씩 움직이면서
관계를 흔들어.”

나는 비웃듯 말했다.

“근데 왜 저만 흔들려요? 왜 전 항상 망치고
힘들고 무너지고…왜 저만 이렇게 약해요?”

상인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너만 약한 게 아니다.
단지 너는 ‘관계가 뭔지 배우는 중’일 뿐이다.”

나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그럼…왜 하린이는 안 흔들렸어요?
왜 걔는 침착하고 왜 걔는 저보다 어른 같고
왜—”

“그 애도 흔들렸을거다.”

상인의 말은 예상보다 단호했다.

“흔들렸기 때문에 너에게 ‘쉬자’고 한 거야.흔들리지만 무너지고 싶지 않아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상인은 내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관계는 말이 아닌 ‘거리’를 다루는 기술이다.”

“…거리?”

“그래.너는 네 감정을 상대에게 ‘거리 없이’ 던졌고,
그 애는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냈다.그 체력이 먼저 바닥난 것이다.”

나는 참고 있던 말을 쏟아냈다.

“그럼 저한테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상인은 고개를 저었다.

“문제가 아니라,아직 ‘거리 조절을 배우지 못한 상태’다.”

“그게… 무슨 차이예요?”

“문제라고 생각하면 너는 너를 미워한다.
배우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하면 너는 너를 키울 수 있다.”

그 말은 마음을 찌르는 동시에
어딘가를 풀어주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근데 노력했는데요.진짜로.저, 고치려고… 했어요.”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은 의도,하지만 관계는 ‘행동’으로 확인된다.”

“그럼…저는 항상 실패하는 사람인가요?”

상인은 다시 내게 다가와 아까 건넸던 끊어진 목걸이 줄을 가리켰다.

“준호야.이 줄이 왜 끊어졌는지 아니?”

“…제가…책임을 못 잡아서요.”

“맞다.그것은 ‘책임이 끊어진 자리’다.”

상인은 내 손바닥 위 줄을 한 번 더 올려두며 말했다.

“관계는 서로의 마음을 묶는 끈이 아니라,
서로의 책임이 만나서 생기는 연결이다.”

나는 줄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럼…전 다시 묶을 수 있어요?”

상인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준호야,사람 사이의 끈은 상대가 먼저 잡아야 묶이는 게 아니다.
먼저 ‘네 안의 끈’을 묶어야 한다.”

“…내 안의 끈?”

“그렇지!
네 감정을 네가 책임지고,
네 말을 네가 지키고,
네 불안을 네가 다독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다.”

나는 그제야
상인의 눈빛이 왜 항상 흔들리지 않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천천히 말했다.
“관계는… 상대가 나를 붙잡아주는 게 아니라 제가… 저를 붙잡는 데서 시작하는 거네요.”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걸 철학에서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라 부르기도 하지.”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어려운 말이 왜 필요해요…?”

“선험…뭐시기?”

상인은 웃었다.

“의미는 간단하다. 네가 겪기 전에는 몰랐던 진실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하나로 합쳐 이해하는 것.
그게 선험적 종합이다.”

“실연이요…?”

“그래. 실연은 경험이지만
그 경험을 통해 너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관계란 무엇인지’,
‘너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종합해서 다시 이해하게 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오래 씹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마음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럼 전 아직 배우는 중인 거네요.”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오늘 밤,
너는 아주 중요한 걸 배웠다.”

상인은 마지막으로 내 손을 천천히 감싸며 말했다.

“끊어진 줄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다시 묶을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사랑을 배운다.”

그 말은 내 심장 가장 깊은 곳까지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렀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저… 다시 묶을 수 있는 거겠죠?”

상인은 조용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숨을 들이쉬려는 순간,
내 마음속 가장 깊은 조급함이 터져 나왔다.

“아저씨…근데… 그럼…하린이는요?
저… 지금 가서 잘 얘기하면… 돌아올까요?
그리고… 아빠랑도…민수랑도…다… 해결될까요?”

목이 점점 조여왔다.

“저…오늘 안에라도 잡고 싶어요.
내일이면 더 멀어질 것 같아서…”

상인은 손에 들고 있던 금속 조각을 내려놓고 나에게 완전히 몸을 돌렸다.

“준호야,너 지금‘관계’가 아니라 너는 네가원하는 ‘결과’를 붙잡으려 하고 있다.”

나는 반발하듯 말했다.

“그게 뭐가 달라요!돌아오기만 하면 되잖아요!
다시 같이 지내고…다시 말하고…다시—”

“그건 관계를 되돌리는 게 아니다.상태를 되돌리는 거다.”

나는 멍해졌다.

“…상태요?”

상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좋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좋았던 때’는 이미 네가 깨뜨린 말들 위에 세워진
가벼운 기둥이었어.”

상인의 말은 차갑지 않았다.단지 정확했다.

“너는 지금 하린도, 아버지도, 민수도
빨리 회복하고 싶어한다.
그 마음이 나쁜 건 아니다.하지만—”

상인은 테이블 아래에서
오늘 내게 준 끊어진 목걸이 줄을 다시 집어 들었다.

“끊어진 줄은 매듭을 묶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 시간이…얼마나 걸리는데요?”

상인은 잠시 웃었다.

“하하하 이거이거 바보인지는 알았지만 지금보니 더 바보였구나

너는 지금 ‘사람’을 신발 끈처럼 묶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아니야.그런 뜻이 맞아.네 말 속에는 조급함이 흘러.”

상인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호야,너는 아직 ‘관계는 회복이 아니라 재건’이라는 걸 모르고있구나.”

나는 숨을 멈췄다.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는 게 아니라
새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아버지와도,민수와도,하린과도.”

“그럼…전 어떻게 해야 돼요…그냥 기다리라고요?”

조급함과 불안이 한꺼번에 새어 나왔다.

상인은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라는 게 아니다.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뭘요?”


상인은 손가락을 세어 올렸다.

“네가 먼저
① 말투를 바꾸고
② 감정을 다스리고
③ 책임을 지는 아이가 되는 것.”

나는 울컥했다.

“그럼…그렇게 하면 전부 다… 돌아오나요?”

상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 말은 너무 단호해서
순간 가슴이 텅 비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문장에서
상인은 조용히 나를 다시 끌어올렸다.

“하지만 네가 변하면
관계는 반드시 변한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예전보다 멀어질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과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상인은 말을 이어갔다.

“중요한 건 ‘누가 돌아오는가’가 아니라
‘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다.”

나는 한참 동안 말하지 못했다. 상인은 내 침묵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제야 상인은 내 손에 쥐어져 있던 끊어진 목걸이 줄을
가볍게 들어 보여주었다.

“준호야, 줄을 다시 묶을 수 있으려면
두 끝이 ‘단단해져야’ 한다.”

상인은 내 손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 너는 네 쪽 끝을 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준비가 되면
누구와든 새로운 관계를 만들 힘이 생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관계는 붙잡는 데서 회복되는 게 아니라,
변하는 네 모습 위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등불 아래에서 목걸이 줄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치 새로운 매듭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럼…저부터… 다시 묶어야겠네요.”

상인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그게 오늘 네가 배운 가장 큰 진실이다.”

나는 천막을 나섰다.
바람이 식었지만
손안의 끊어진 줄만은 묘하게 따뜻했다.

그 밤,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관계를 되돌리는 길은
상대를 향해 달려가는 데 있지 않고
나를 향해 돌아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실연보다 더 깊고,
실연보다 더 오래 남았다.

골목을 나서자 밤공기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내 손 안의 끊어진 목걸이 줄만은
희미하게 따뜻했다.
마치 그 열이 내 마음 어딘가를 데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몸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걸음만큼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집 앞

현관문을 조용히 열었다.
불은 꺼져 있었고
집은 깊은 숨을 쉬는 것처럼 조용했다.

나는 조심스레 거실로 걸었다.

그곳에 아버지가 있었다.

TV도 켜져 있지 않은 어두운 방.
소파에 기대 앉은 채
내가 오기를 기다리다 잠들어 있었다.

무릎 위에는
내가 중학교 때 쓰던 헌 교과서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손이 그 위에 얹혀 있었다.
마치 내가 언젠가 돌아오면 그 손을 떼지 않으려는 듯이.

나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숨이 턱 막힌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그 이유가 마음을 뚫고 올라왔다.

“아버지는…

끊어진 줄을 계속 붙잡고 있었구나.”


나는 아까 골목에서 상인이 한 말을 떠올렸다.

“끊어진 줄은 두 끝이 단단해져야 다시 묶인다.”

나는 그 ‘단단함’을
다른 사람에게만 바라왔다.

하린에게도,
민수에게도,
아버지에게도.

“왜 날 이해해주지 않지?”
“왜 버티지 못하지?”
“왜 날 떠나려고 하지?”

나는 계속 그런 질문만 했다.

그런데 지금,눈앞의 아버지는
내가 몇 번을 밀어내도
몇 번을 화내도 문을 쾅 닫아도
귀가 들리지 않는 와중에도
여전히 내 쪽 끝을 붙잡고 있었다.

끊어진 줄의 반대편에서
혼자 매듭을 잡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관계란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시작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내가 단단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내 쪽 줄이 준비될 때까지.

그 사실이 가슴 어딘가에서
뜨겁게 스며올랐다.

나는 소파 옆에 살짝 앉아 아버지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 손은 항상 거칠기만 했는데
오늘은 왠지 매듭처럼 보였다.

깨어지지 않으려는 매듭,
끊어져도 다시 묶으려는 매듭.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아저씨 말이 맞았네.상태가 아니라…
관계를 다시 만드는 거구나.”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내 손을 아버지의 손등 위에 올려보았다.

아버지는 깨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손의 온기만은 또렷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 온기가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아들 줄이 끊어져도 놓지 않았다.”

나는 목걸이 줄을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이제부터…내 쪽 끝을 단단하게 만들어볼게요.”

그 밤,비로소 나는
관계를 재건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그건 다른 사람을 붙잡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변수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흔들림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끊어진 줄을
내 쪽에서 먼저 묶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아버지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긴 밤의 한가운데서 아주 작은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