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골목 상인
실연의 아픔, 자기합리화, 그리고 그 밤의 철학
비틀거리며 골목 안으로 들어섰을 때
천막 아래 작은 등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불빛은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상인은 천막 안에서
무언가를 닦고 있었다.
낡은 램프였는지,
녹슨 금속 조각이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내 모습을 본 상인은
놀라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가볍게 들고 말했다.
“왔구나.”
그 한마디에
그동안 움켜쥐고 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천막 가장자리에 앉았다.
몸은 멍투성이였고,
마음은 그보다 더 망가져 있었다.
“아저씨…”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떨렸다.
“저… 버림받았어요.”
상인은 잠시 침묵했다.그리고 아주 조용히 물었다.
“누가 널 버렸지?”
나는 울컥했다.
“그… 하린이요.제가 잘못한 것도 맞는데…
그래도… 나를 이해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힘들다는 걸… 알잖아요.근데… 좀 더 버텨줄 수도 있었잖아요?”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내 안에서는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부풀어 올랐다.
“저… 진짜 노력했어요.
고쳐보려고…근데 왜…왜 저를 놓아요 저를 왜 버렸을까요..?”
상인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준호야,너 지금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니?”
나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제가… 버림받을 짓을 한 것도 알지만…그래도… 저를 버리면 안 됐잖아요.
그건… 너무하잖아요.”
상인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너 지금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하고 있구나.
하나는 ‘내가 잘못했다.’다른 하나는 ‘그래도 날 붙잡았어야 한다.’”
“…네.”
“그 두 말은 서로를 잡아먹는 말이야.
너는 스스로를 비난하다가갑자기 상대를 비난하고,
상대를 비난하다가 다시 너를 공격하지.”
상인은 테이블 아래에서 작은 깡통 같은 물건을 꺼냈다.
겉은 오래되어 긁힌 자국이 많았지만
반짝이는 부분도 남아 있었다.
“이게 뭔지 아니?”
“…깡통요?”
“그래 그거지 버려진 가능성.”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 말투가 그걸 닮았다.”
“무슨 뜻인데요.”
상인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는 지금 자기 잘못도
상대 잘못도 진짜로 보려 하지 않는다.”
“저… 잘못했어요. 맞아요. 제가 말을 함부로 했어요.
근데 근데”
“그래. 맞아.그건 너의 ‘사실’이지.”
상인은 손가락을 세 개 들어 올렸다.
“사실, 해석, 감정.지금 너는 이 세 가지를 뒤섞어버리고 있어.”
“…?”
“사실은 네가 말을 함부로 했다는 것이고,
해석은 ‘그래도 날 버리면 안 됐다’는 것이고,
감정은 억울함이야.”
상인은 깡통을 나에게 건넸다.
“이 깡통 안을 봐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자기합리화를 할 때
이 모양이 된다.사실이 비어 있거나
해석이 과장되거나 감정이 너무 커지거나.”
“그럼…제가 지금 그런 거라고요?”
“그렇지.”
상인은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투를 더 부드럽게 바꿨다.
“준호야,실연은 끝이 아니다.
실연은 네가 사랑했던 방식이
어디에서 무너졌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지도야.”
“지도…요?”
“그래.그리고 너는 지금 지도 대신 감정만 들고 울고 있는 중이지.”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애가 널 버린 게 아니다.
너의 말투가
너의 감정이
너의 불안이
너 자신을 버린 거다.”
그 말은 잔인할 만큼 정확했다.
하지만 상인은 그 말에 상처가 스며들지 않도록
비유로 감싸 전달했다.
“사랑은 말이 아니다.사랑은 태도다.
너는 말로 사랑했고 그 애는 태도로 사랑했지.”
나는 조용히 물었다.
“…전…그럼 나쁜 사람인가요?”
상인은 잠시 웃었다.
“칸트는 말했지.‘도덕은 의도가 아니라,
그 의도를 실천할 능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상인은 덧붙였다.
“너는 아직 네 의도를 감당할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야.
그걸 죄라고 부르지 않는다.그걸 나는 ‘성장 전 상태’라고 부른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말은 나를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빠져나갈 구멍도 주지 않았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돼요.”
상인은 천막 뒤에서 조그만 끊어진 목걸이 줄을 하나 꺼냈다.
“이건…?”
“책임의 끊어진 선이다.”
상인은 내 손바닥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사랑에서 가장 먼저 끊어지는 건
마음이 아니라 ‘책임의 선’이다.
그 선이 끊어지면 말은 감정이 되고 감정은 칼이 된다.”
상인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묶고 싶으면 먼저 너 자신과 묶어라.
네 감정, 네 말투, 네 불안을
네가 먼저 책임질 줄 알아야
다음 사랑에서도 끊어진 줄이 흔들리지 않는다.”
내 손바닥에서
끊어진 목걸이 줄이 작게 흔들렸다.
상인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준호야.
사랑은 너를 완성시키지 않는다.
사랑은 너를 드러낼 뿐이다.”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상인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막 밖 골목을 가리켰다.
“이제 가도 된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친 다리로 걸어 나가면서도
손 안의 끊어진 줄만은 절대 놓지 않았다.
하지만…그래도 무언가 내안의 답답증이 풀리지 않았다.
정말 한심하고 답답하고 설명도 안되고
내 마음인 분명히 내 마음인데 왜 내 마음데로 통제도 안되고
자기멋대로 나에게 와서 이렇게 저렇게 자기가 하고싶은데로
나를 흔들어놓고 있는지… 관계 그게 뭔지도대체,,
그래서 나가려던 찰라 나는 발검음을 멈추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