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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Aug 15. 2016

한라대 앞 공원 놀이터에서

저녁을 먹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걷다 보니 익숙한 동네에 가게 되었다. 옛날에 회식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술도 먹었던 동네다. 어둠이 내려앉은 주택가엔 노란빛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있고 가게의 따듯한 불빛도 조금씩 흘러나와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추억은 힘이 없지만, 추억은 그 시간에서 멀어지려고 할 때의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힘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힘이 앞으로 가기만 하는 시간 속의 사람을 붙잡으려고 할 때엔, 정말 강하게 붙잡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 동네를 지나며 문득 지나간 시간과 사람들을 생각했다. 내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적은 별로 없지만 강요된 묶음으로 나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 그 시간 속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은 빠져나가 버렸고 나도 빠져나왔지만, 정말로 그 시공간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인생의 한 토막과 이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벌써 빠져나와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익혀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 지나온 시간의 일부분일 뿐인데, 왜 그렇게 이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 동네 공원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철봉을 타고 내려오는데, 문득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라면 응당 생각해야 하는 가치들과 삶의 방향, 책임감 같은 것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맞는 것일까? 누가 보면 나는 되게 이상한 어른이지 않을까? 나는 어른이 되기 싫다. 그런데 어른이 되긴 되었다. 그래서 어른 흉내를 내고 살아간다. 하루하루마다 쉬이 넘어갈 수 없는 고민과 반성이 생기는 이유는 어른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서, 내가 어른이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실은 궤변인 것을 안다. 실은 내가 그만큼 세상에 대한 똑바른 이해를 하고 책임을 지고 살기 싫다는 것을.


왜 세상은 어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어른의 문이 열리는 것일까. 그냥 최선으로서의 사람으로 살고 싶다. 고민도 없고, 지나온 생의 기억이 짧은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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