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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May 24. 2018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

조금 더 편해지고 싶어서

일반화하기 쉽지 않은 말일 수도 있지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관계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는 사실. 나도 그렇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면 이런 고민이 드러나는 경우들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라는 게 무엇인가. 정확히 말을 하자면 연인과의 관계다. 연애를 하는 순간은 서로의 마음의 무게 차이 때문에(사랑이 아니다) 매일매일이 심연으로 치닿는 느낌이다. 가벼운 쪽이든 무거운 쪽이든.


우리는 관계가 힘들다는 심리 문제를 두고 '상담'하는 것에 인색한 문화이다 보니, 이런 고민이 있어도 웬만해선 심리적인 접근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푸념하듯 하소연하고 징징 대는 문화는 팽배하지만 정작 치유의 역할을 하는 심리적인 '상담'은 정말이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저마다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해결 방법은 잘 모른 채 살아간다. 다 울고 난 후엔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자책하거나 묻어두고 이겨내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 들여다 보고 스스로 고쳐나가기 위한 지침서 같은 책이다. 연인과의 관계, 정확히는 이별의 봉착이나 이별 후의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그대로를 순서대로 이야기해보자면) 연인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원인은 내 성격이나 성향 문제는 아니다. 각박해진 현대사회가 개개인을 독립적으로 만들어서도 아니다. 전적으로 이 모든 문제는 어렸을 때 어떤 환경과 어떤 경험 속에서 자랐는지에 기인한다. 이게 아주 병리적인 징후로 나타난다면 '트라우마' 같은 것이 될 텐데, 사실 이렇게 심각하게 병리적으로 나갈 것 까지도 없다. 우리는 모두가 어린 시절의 '나'를 여전히 속에 지니고 있는데, 바로 이때의 '나' 때문에 이런 징후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그림자 아이'라고 부른다. 


그림자 아이는 다 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인간관계 속 나의 모든 태도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인 관계에서, 이 '아이'의 모습이 참 노골적으로 보인다. 사랑 받지 못한 성장기를 겪은 사람은 애착 성향이 강한 사람이 된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 성향의 사람은 애정결핍 스트레스와 분리 불안, 집착을 갖게 된다. 반대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집착과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사람은 자유 성향이 강한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반대로 자기 방어 기제가 강하게 자리 잡으며 혼자서도 뭐든지 잘할 수 있고, 잘 해내야 하고,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깐깐한 잣대를 가진 사람이 된다. 


하지만 이들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 모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일한 불안 의식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서로 사랑하며 안정된 관계이고 싶지만, 사람은 누구나 영원하지 않을 불안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방어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같은 불안이 만들어내는 인간 관계의 문제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림자 아이의 존재를 냉철하게 인식하라고 한다. 그림자 아이를 직면한 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런 나를 '타자화'하여 다스리기를 권한다. 이 책은 300p에 달하는데, 사실상 이 방법론을 매 챕터마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똑같은 이야기를 300p 넘게 읽다 보면, 반복 효과 덕분에 그림자 아이를 어떻게 다스리면 되는지를 부지불식간에 거의 외운 상태가 된다.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기 때문에 조금 지루한 감은 있다. 게다가 각자의 '어린 시절'을 도매금으로 이야기하기엔 각자의 복잡한 사정이 정말 많을 것이고, 기억조차 힘들어 억지로 잊고 은폐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나, 어제의 나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일 처음 사람에게서 사랑 혹은 무관심을 배운 때가 바로 그 '어린 시절' 아니던가. 연애 상담을 받을 시간은 없는데, 구체적인 '방법'이 그래도 필요한 사람이 보면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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