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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05. 2018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뀌는 삶 <호랑이의 눈>

주디 블룸

유한한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반드시 겪어야만 하고 절대 피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자신의 죽음도 피할 수 없고 가족의 죽음도 피할 수 없다. 혹시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면-가족만큼 가까운 주변 누군가의 죽음을 생을 사는 순간엔 단 한 번이라도 겪게 될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겪는다. 단지 각자의 역사가 만들어내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죽음이라는 사건의 도래를 나보다 빨리 경험한 누군가들도 많을 것이다. 설사 누군가라는 존재가 아직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청소년이라 할지언정, 내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인간의 어떤 정의를 나보다 먼저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누군가의 이야기는 들어볼 만한(나아가서는 배울 것이 있는)것이라 생각한다. <호랑이의 눈>을 본 김에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청소년 문학을 어른이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호랑이의 눈>은 이런 흥미로움을 안고 읽은 소설이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의 죽음을 거의 눈앞에서 경험한 주인공 데이비는 아버지를 잃은 상처를 잊고자 고모네 집으로 잠시 동안 이동하여 살게 된다. 데이비의 곁에는 남동생과 고양이, 그리고 아빠를 너무 사랑했고 이제는 그의 죽음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엄마가 있다. 이들은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우리 가족' 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사는 고모, 고모부와 한지붕에서 살기 시작한다. 


데이비는 멀리 떠나온 이곳에서 어른의 여러 단면들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의 여러 단면들이라 표현해도 되겠지만, 작은 변화조차 두려워하고 자신의 세계가 너무 강력해진 데이비 주변의 어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어른답다'. 그 와중에 만난 '울프'는 어른과는 다른 사람이다. 데이비가 세상을 용기 있게 살기 위하여 동기부여를 해주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울프와 함께한, 짧지만 강렬한 시간을 통해서 데이비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가족이 세상을 떠난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어제와 같이 여전한 날들은 이 어린 소녀에게도 계속 이어질 뿐이다. <호랑이의 눈>은 아직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이후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40개의 나날들을 잘게 쪼개어서 이어 붙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린 주인공의 매일매일을 우리는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정확하게 40일의 날수로 쪼개서 쓴 것은 아니지만, 사건이 터진 직후 (챕터가 쌓일수록) 자의반 타의반 변해가는 주인공의 생활을 보고 있노라면 끊기지 않고 계속 쓰여지는 주인공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빚어낸, 세상에 후유증처럼 남은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샌가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 또한 심연의 동굴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호랑이의 눈>은 성숙한 인간으로서 한 발짝 나아가는 진행형 결말을 가지고 있기에 성장소설로 이야기해도 괜찮기는 하다. 하지만 소설이 그리고 있는 사건과 풍경은 어른의 세계 속 사건들과 거의 다르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그리는 상상의 세계는 어른이 되어서도 덤덤하게 맞서기 힘든 바로 그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경험한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나의 삶을 어떻게 지속하면 좋을지 잘 모르는 순간이 올 것 같다. 순간적으로는 공포스럽고,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올 것 같고, 아무튼 잘 이겨내야만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나의 삶을 계속 이어가야만 할 것이다. 방법은 모두가 다르겠지만, 데이비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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