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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07. 2018

이 삶의 모든 것은 글이라는 것을,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술술 읽힐 것 같으면서도 잘 읽히지 않은 첫 문장이 인상 깊다.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글을 쓰고 있는 본인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담긴 이 문장을 필두로 해서, 작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 얇디얇은 책의 모든 구절은 이 문장에서 비롯되었다. 


<문맹>은 글이 곧 나이고 내가 곧 글이자, 삶이면서 공기와도 같은 글과 함께 살아온 아고타 크리스토프 본인의 일생을 '적은' 책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모국어가 아닌 적의 언어로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된, 상실의 역사가 시작된 그날부터의 자신의 삶을 '문맹'이라고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외국어를 통한 수단과 방법이 본인의 삶 자체가 되었다는 듯 담담한 문체로 어리고 젊었던 시절의 수난을 보여준다.


사실 <문맹>은 진짜로 화자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일생을 담은 것은 아니다. (비록 외국어일지라도) 이제 막 글을 활발하게 생산할 수 있게 된 그 시작점에서 돌연 <문맹>은 끝나버리지만, 그 뒤를 굳이 읽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사람의 삶의 모든 것은, 어떤 언어이든 간에 글이라는 것을.



글이라는 것,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특별히 좋아하는 것에 대한 누군가의 대단한 애착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극심하다는 것, 누구나 그런 것 하나쯤은 다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쓴 사람처럼 소위 책을 좋아한다는 독서가들도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대견하게 여기고, 고상한 취미인 듯, 자랑하듯 이야기하지 않나. 그런데 이런 타인들의 '글'에 대한 애착을 엿듣다 보면, 무언가 그 자체만으로도 '넘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들의 자랑 섞인, 글에 대한 애착에는 이미 무언가의 넘침이 느껴진다. 수많은 글을 읽은 후, 수집벽을 통해 얻은 그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가지게 된 현대인들의 그릇이 그만큼 넓지 않아서 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문맹>은 읽어 나갈수록 읽을수록 반대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분명히 글에 대한 애착과 소중함을 가진 사람이 쓴 글인데, 그만한 감정의 차오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부분 부분은 너무 메마른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든다. <문맹>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마음이 혹시 정말 그랬던 것은 아닐까. 어떤 글이라도 병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데, 병적으로 사랑하며 쓸 수 있는데 그걸 채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모국어를 쓸 수 없게 되어 적의 언어를 쓰게 된 지금의 상황이, 그러니까 이 현실을 글로 쓰려하니 글로써의 감정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없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나는 이미 독서를 완료하였지만, 하나 아쉬웠던 점이 있다. 작가의 상황을 보다 더 제대로 이입하고 읽기 위해서는 본문을 바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책 맨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문맹>을 집필한 바로 그 시절로 빠르게 뛰어들 수 있도록 안내를 친절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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