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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Aug 08. 2018

<도쿄의 부엌>을 덮고난 뒤 나의 부엌을 돌아보세요

도쿄의 부엌

30여 년을 집에서 밥을 먹고, (이보다는 짧은 시간이지만) 음식을 해 먹고, 밥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는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처음 깨달은 사실이 있다. ‘부엌’이야말로 그 사람의 맨얼굴을 보여 준다는 것. 내가 사는 집 부엌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어김없이 나의 부엌은 나의 생활 습관이 배어있고, 버릇도 배어있고, 신조나 철학이 배어있다. 깨끗하다거나 좀 지저분하다거나, 정리를 잘 해놨다거나 그저 시원하게 늘어놓고 산다거나.. 다 자기 성격대로 부엌을 해놨을 것이다. 이런 부엌의 모습은 나의 생활 방식이 도식화된, 나의 또 다른 얼굴이다.


<도쿄의 부엌>은 저자가 도쿄(그리고 근교)에 사는 50여 가구를 방문 취재한 내용을 다룬 책이다. 첫 번째 챕터는 이들 50여 인터뷰어들이 사는 집 부엌의 간단한 사진과 설명이 있는 스케치 모음이다. 두 번째 챕터는 몇몇 인터뷰어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묶었다. 마지막은 나만의 부엌 ‘필수템’들, 예컨대 조미료나 주방기구 같은 것들을 종류별로 모아서 보여주는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가구별로 전반적으로 짧은 인터뷰와 한두 장의 사진만으로 간략하게 보여주는 바람에 어떤 가정집에 대한 흥미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바로 끝나버려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 구성(SLDK), 연식, 입주연차 그리고 집주인의 나이 정보를 곁들여서 읽다 보면, 인터뷰 내용은 짧더라도 이들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행복을 부엌과 요리를 통해 얻었을까 하는 상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들은 부엌 앞에서 요리를 하고, 그것을 나누어 먹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부엌에서 삶의 재미를 새롭게 찾은 사람도 있고, 지금은 세상에 없는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쇼와시대에 만들어진 지극히 오래된 집에서, 아주 오래된 싱크대와 상부장을 안고친 채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를 지키면서 사는 스타일리시함을 보야주기도 한다. 작고 작은 일본의 가옥, 그중에서도 부엌 한켠을 멀리서 지켜볼 뿐인데도 재미있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서 마치 그 인터뷰어의 집에 놀러 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동안 집이라는 공간이 집주인의 삶을 대변한다고 했을 때, 그곳의 대표적인 얼굴은 ‘거실’ 혹은 ‘서재’ 일 것이라는 생각만 했다. 집주인의 가치관은 즐겨 읽는 책과 취미의 공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그래도 좋아한다고 여기는 나 조차도 진짜 기운 빠지고 위로가 필요할 땐 책장이 아닌 냉장고 앞을 서성거림에도 말이다. 오늘을 살게 하는 건 내가 사는 집의 냉장고이다. 그리고 내일 또 내가 괜찮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싱크대에 쌓인 그릇의 설거지를 해야한다. 오늘 또 건강하고 별일 없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를 그들의 부엌과 당신의 부엌에서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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