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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Aug 05. 2018

톰 행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

톰 행크스 소설집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참 오랜 시간 다양한 영화를 통해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변치 않은 톰 행크스 특유의 느낌이 있다. 평범한 외모에 때로는 남을 더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그는 그 자신을 감출 수 없는 톰 행크스다. 때로 특이하고 난해한 캐릭터로 분하더라도, 그는 캐릭터 밑에 깔려있는 그 자신이 톰 행크스임을 잃지 않는다. 독특한 메쏘드나 목소리를 가진 것 같지는 않은데 톰 행크스가 출연한 영화는 언제나 결과적으로 ‘톰 행크스 영화’가 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만의 아우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가 소설집을 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톰 행크스는 엄청난 타자기 수집광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2시간씩 글을 쓴다고 한다(컴퓨터나 다른 메모 도구들이 있겠지만 가능한 조건에서는 왠지 타자기로 썼을 것 같다). 스마트폰 타자기 앱도 만들었다고 하고. 이 정도 인물이면 고상하게 표현하는 ‘수집광’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고 '타자가 덕후'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서 탄생한 듯한 소설집의 제목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이 정도 덕후력이면 타자기는 나 자신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이라서 ‘톰 행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앞뒤 표지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문구는 “모든 미국인의 삶이 여기에 담겨 있다”라는 말이었다. ‘모든’이라 함은 불특정 다수를 일컫는다. 자기 이름의 인장 같은 아우라를 가진 배우의 소설 작품집이 정작 내가 주인공이 아닌 남들을 관찰하는 인간 극장식 ‘르포르타주’인 걸까 싶었다. 자기 자신이 언제나 자신의 페르소나 같은 영화인이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우지 않고 아주 일반적인 인간 군상을 다루는 것 같아 의외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 안엔 반드시, 톰 행크스의 영화들처럼 그만의 아우라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다 읽어보니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닌 책을 직접 집필한 톰 행크스가 형성한 아우라는 그가 주연한 영화들과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이다. 마치 미국을 잠깐 다녀온 느낌도 든다. 그런데 미국 '여행'은 아니다. 밀항에 성공해서 생전 보지도 못한 뉴욕의 42번가의 거리에 맨몸으로 도착한, 조금은 두려워도 용기는 계속되는 느낌이 든다. 비록 가진 돈 하나 없고 두 눈과 귀, 촉감밖에 없어서 나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만 미국의 모든 것을 느껴야만 하는 상황이지라도 말이다.


소설집을 구성한 매 단편마다 ‘타자기’가 등장한다. 바로 이 타자기는 미국의 모든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미 전자 입출력기기 (노트북, 아이패드, 스마트폰)가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는데, 단편들 속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타자기라는 존재는 어딘가 외로움과 궁핍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것은 물질적인 궁핍함이 아니라, 일상적이지 않은 워드프로세서 기계를 사용하여 어떤 맥락도 없는 마음속 문장들을 뜬금없이 입출력한다는 사건에서 오는 외로움의 정서일 것이다. 미국이라는 곳은 어쩌면 바로 이런 외로움이 가득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수록된 여러 단편들 중 <내 마음의 명상록>이 바로 이런 정서가 많이 담긴 것 같다(내 마음에 가장 맘에 들었던 제목이기도 하고).


무언가 외로운 정서를 관통하고 있는 이 단편들 속의 미국인들은  중국 혈통 성씨를 가진 볼링을 잘 치는 남성이기도 하고, 불가리아에서 밀항한 이민자이기도 하다. 아무튼간에 돈이 너무 많아서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떠날 수 있는 엄청난 부자이기도 한다. 영화배우가 되기 위하여 시골에서 뉴욕으로 상경하여 이력서를 들고 전전하는 무명배우도 있다. 이 모두는 톰 행크스가 생각하는 ‘미국인’이다. 미국은 여전히 희망과 개척의 땅이라서 처음 유럽인들이 이주한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시작’과 ‘도전’이라는 설렘을 준다. 하지만 모든 시작과 도전, 바라는 행복이 뜻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어서 좌절하기도 한다. 행복하기도 하고 혹은 그러지 못해 외롭기도 한 다분히 미국적인 풍경들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 번역도 훌륭하여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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