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Aug 23. 2018

카메라 없이 카메라로 만든 영화 <서치>

아니쉬 차간티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서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세상 여러 곳에 놓았던 카메라들을 이제는 치워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카메라’라고 하는, 관객의 눈을 대리하는 물질적인 매체는 그동안 짐짓 영화의 시점이 아닌 척, 등장인물과 사건 사이에 늘 존재하면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척 하기에 급급했다. <서치>는 카메라가 그렇게 ‘아닌 척’ 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서치>는 아예 대놓고 세상의 수많은 카메라들의 관점을 드러내 놓고 만든 영화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러닝타임 내내 한 순간도 빼먹지 않고 증명한다.


그런데 영화가 되려면, 무언가를 촬영하기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이 영화는 우리 일상에 이미 수 없이 많은 카메라들에 그 역할을 주기로 한다. 각종 CCTV와 노트북 캠, 스마트폰 카메라, 유튜브 뉴스 클립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풀어낸 <서치>는 너무나 영화스러운 서스펜스를 담고 있지만, 한 편의 영화가 되기 위한 도구적인 과정은 영화적이지 않다.



미국 산호세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는 두 부부와 딸 하나가 있다. 그런데 엄마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엄마를 잃은 슬픔 속에서 아빠와 딸은 단둘이 살아간다. 


엄마의 죽음을 입 밖으로 드러내기 싫어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척만 하는 아빠, 아직은 그래도 엄마가 필요한 사춘기 소녀 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이 터진다. 친구네 집에 간 딸이 갑자기 실종된 것. 아빠는 딸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어디를 가냐고? 그는 일단 온라인으로 딸을 찾아 나선다(사실 여기서부터 이 영화는 비현실적이다. 가족이 실종되었다면 ‘내 눈으로 찾아내기 위해’ 관련 있는 어떤 장소든 직접 가서 헤집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니 말이다). 아빠는 딸의 페이스북을 뒤져보고, 인터넷 방송 녹화본을 추적한다. 이 과정이 너무 술술 잘도 흘러가는 게 참 말도 안 되긴 하지만, 마치 정보 검색사가 정보 검색을 하듯 딸을 찾아나가는 아빠의 컴퓨터 화면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듯 관객들은 절대 여기서 눈을 뗄 수 없다. 개연성은 애초부터 무너졌지만 '관음증'이란 딱풀이 관객을 아빠의 컴퓨터 화면으로부터 떨어지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빠는 딸이 온라인상에 남겨둔 흔적을 차근차근 추적하면서 조금씩 갈피를 잡게 된다.


아빠는 담당 형사의 도움으로 조금씩 딸의 소재에 가까워진다. 결국 그는 딸의 행방을 거의 찾아내기에 이른다(스포일러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난 결론에 석연치 않음을 느끼고, 거의 종결된 실종 사건에서 진짜 답을 찾기 시작한다. 그 석연치 않음을 느끼는 단서들을 아주 우연한 곳에서 찾아낸 것이 갑작스럽고 기적 같기는 하다. 이런 단서들을 조립하기까지의 시간도 매우 짧은데, 아빠의 전직이 혹시 형사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튼 영화는 ‘대반전’을 향해 가는데, 이런 대반전까지 가는 여정 역시도 너무 쉽게 풀리는 바람에 약간 맥이 빠지고 실마리가 풀리면 풀릴수록 시시해지고 만다(아무튼 해피엔딩에는 이르게 된다).



영화의 제목 <서치>는 아빠가 딸을 찾기 위한 모든 수색과 조사, 검색과 탐색 행동 모두를 이른다. 이것은 단순히 색인된 문서 목록에서 검색어로 검색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미 ‘온라인’ 세계 속 텍스트만의 왕국은 무너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영상과 음성, 이미지가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찾기 위해선 감각에 더해 육감까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해 <서치>는 가족의 행복을 위대하게 이끌어낸 아빠의 영웅 서사를 그린 영화는 아니다. 이런 결말은 단지 영화적으로 문제없는 매듭을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것 같고, 사실 이 영화는 수 없이 많은 정보들 속에서 진짜 필요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여 그것을 조립하는 게임 같은 상황을 흥미롭게 그리기 위한 목적의 영화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왠지 단지 몇 분 남기고 무사히 방탈출에 성공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우리의 시대는 이미 너무 많은 카메라와 상생하는 시대가 되었다. <서치>는 바로 이런 점을 쉼 없이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생활은 지속적으로 영화적 재료로 남겨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삶을 비추는 것이 바로 영화라면, 우리의 삶의 많은 순간은 이미 영화의 재료로 남겨지고 있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기왕'사는 김에..어떻게 살면 좋을지 생각해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