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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Aug 17. 2016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나를 얼마나 꺼내놓는 것이 괜찮은지 늘 고민하게 된다. 감정은 어디까지 꺼내도 괜찮을지, 나의 구체적인 생활은 어디까지 알려도 되는지, 이런 일들을 타인이 굳이 알 필요가 있는지 하는 고민들. 이렇게 '정도'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 입을 떼는 일부터 주춤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주춤하는 데에 신경을 너무 과하게 쓰다 보니, 그것이 응어리 같은 것으로 남아서 내가 진정으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내 모든 이야기를 빗장 없이 그대로 다 풀어놓는 때도 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당장 내일 남이 되어도 괜찮은 사람들에게는 나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하여 벽을 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전달하는 잉여 정보와 감각 경험이, 감정적인 증여가 타인에게 공해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요즘 입을 열면 종종하는 이야기는 나는 잘 운다는 말이다. 오늘도 그런 이야기를 결국 동료들에게 해버렸다. 나를 알게 된 최근의 사람들은 나를 울보로 알고 있을 것이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지만 나에게 이런 감정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왠지 표현하고 싶었다. 시한폭탄 같은 느낌이 아니라 조명탄 터트리는 느낌으로. 내가 가진 몇 가지 신호 장치는 이런 표시도 한다는 기능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는 일은 결코 가여운 일도, 불쌍한 일도, 측은하게 보아야 할 일도 아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에게는 우는 일이 엄격해야 한다 점을 항상 생각한다. 왜냐하면 단지 조그마한 일로, 때로는 큰 일로 평정심을 잃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우는 일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나의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되고 싶었던- 쓸쓸함 속에서도 의젓한 모습의 사람이 있다. 항상 상상했던, 추운 겨울 이파리가 다 떨어진 채 굳건히 칼바람을 견디고 있는 나무와 같은 모습이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나의 의지로 이어진 적은 없어서 언제나처럼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마저도 눈을 감고 끅끅 우는 일이 많아서, 울음에 잠겨버리는 순간에는 땅이 저 밑바닥까지 꺼진 듯 무엇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 내려가 나를 누르는 일이 많았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은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되고 싶다고 구체화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외로운 사람을 생각한다. 눈 내리는 산속에서 나무를 하고 내려와 불을 붙이는, 쥔을 붙이는 사람. 한 겨울에 그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생각한다.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홀로 지내는 시간 속에서도 나를 되돌아보며 나의 성찰이 나의 곁에 있는 친구가 되어 견디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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