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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Oct 05. 2016

나의 생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진심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말이 진심으로 나왔다. 생일 케이크 초를 불면서 사람들에게 '행복하세요'라고 이야기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나의 생일을 축하해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사실을 생각해'주고' 축하해'준' 사람들이니까. 


세상에 태어난 일이 기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파티 같은 게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발생의 이유를 묻고 생을 유지하는 것, 존재를 점유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일이 많았다. 세상이 싫지도 나쁘지도, 그렇게 힘든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세상의 적잖은 존재들에게 나는 짐이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건 부모님이다. 미안한 생각뿐인데, 그런데 정작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하지 못해서 더욱 세상에 태어난 게 미안스럽다. 딱히 말썽을 피우며 살아온 건 아니지만 엄마 아빠가 누군가를 위해, 그중에서도 나를 위해 엄마 아빠가 된 일이 미안하다. 효도라는 이름으로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넓게는 도리라고 이야기를 하는 그런 의미랑은 별개로 타인에게 관계를 하나 만들어 걸치게 해 준 사실-나의 엄마 아빠가 된 것 그리고 나의 부모가 되기 위하여 엄마 아빠가 함께 부부로 살아가는 일-그 자체가 미안한 일이다.


오늘은 내가 태어났다는 생일이라 하니 더더욱 그런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슬픈 일은 내가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병원을 나오면서 아기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나 자식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하여 의문을 많이 품고 살면서도 나도 자식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자식을 낳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병원에서 이야기를 하니 오히려 반항심 같은 게 생겨서 그랬다. 나도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 아빠가 제일 먼저 나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몇 년 전부터 아빠가 그런 문자를 생일 때마다 보내주시긴 했는데, 만 서른 살이 된 나의 생일을 제일 먼저 생각해준 사람이 아빠라니 정말 눈물이 뚝뚝 떨어질 뻔했다.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잊고 살고 나를 버리더라도, 나를 미워하더라도 아빠와 엄마는 나를 생각해 준다. 세상에 나를 생각해주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언니와 우리 강아지들이 있다.


요즘 이사를 온 이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 대여섯 살 때의 추억 같은 것이 상상과도 같은 기억으로 떠오른다. 대여섯 살 때 이 동네에서 살았는데 난 아직도 다섯 살 때의 그런 마음으로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에겐 칸쵸 하나 사 먹을 수 있게 언제나 딱 백 원만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많이 몇 배나 더 많이 받고 살았다. 고생스러운 시절을 살도록 내가 많은 걸 바라고 살았다. 


딱 30년 전에 아빠는 우리 동네에 있는 이 종합운동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30년이 지나고 나서 내가 여기서 아침에 출근을 했다. 조금 덜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되는 것일까. 만 삼십 년 하고 하루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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