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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Oct 20. 2018

내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에어비앤비의 청소부>


<에어비앤비의 청소부>를 읽기 전 예상했던 캐릭터와 줄거리는 여행자 숙소를 전담으로 관리하는 매니저가 다양한 손님들을 경험하면서 수집한 익명의 관찰기록이었다. 여행 냄새 풀풀 풍기는 그런 소설 말이다. 조금 나이브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구체적으로 지목된 제목은 나를 그렇게 의례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책의 표지는 한적한 해변도시 어딘가에 자리 잡은 숙박시설을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아직도 왜 표지가 이렇게 새파랗고 청명한 하늘을 그리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무튼 <에어비앤비의 청소부>는 이런 상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소설을 읽기 전에, 왜 이 소설의 제목에 '청소부'가 들어갔는지, 그리고 그 청소부가 일하는 곳이 왜 그냥 일반적인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에어비앤비'인지 곱씹어보면 좋을 것이다.


대기업 재무부서에서 일하는 평범한 30대 회사원 영훈은 어느 늦은 밤 여자 친구와 함께 이태원 에어비앤비에서 숙박을 하게 된다. 잠을 이루기 전, 우연한 말다툼으로 영훈은 그녀와 '거의 헤어진' 지경에 이른다. 헤어짐의 위기를 겪으며 영훈은 그 헤어짐의 순간을 만들었던 시간과 배경에 분풀이를 하기 위해 바로 그 에어비앤비를 다시 찾게 된다. 그곳에서 영훈은 에어비앤비 청소부 '운'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가 왜 지금 청소부로 지내고 있는지도 알게 된다. 그를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훈 역시 자신이 왜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말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큰 스케일로 퍼져 나간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는 에어비앤비라는 매개를 통해 만난 두 명의 익명, 두 개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 우리의 생활 방식을 거친 듯하면서도 경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경험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와 재화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누구이고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어떤 것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건 그냥 '우버' 혹은 '에어비앤비', 한국으로 이야기하자면 '당근 마켓' '오픈 카톡' 스러운 것이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집에 머물지만 실제로 그게 그가 소유한 집인지, 호스트의 이름은 본명이 맞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꼭 알 필요는 없다. 꼭 본명이 필요도 없고 진짜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 '어떤 것'이 지워져도 우리는 생활하고 노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두 주인공은 서로의 고민들을 알게 되기도 하고 서로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기도 한다. 사실 단순히 약점이라고 할 수 없는 '범죄'수준의 사건들-해킹, 개인정보 거래 같은 사이버 범죄-이 빵빵 터지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이러한 사건들을 중점적인 내용으로 다루기보다는, 사건들이 발생하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혹은 그런 위협과 사건에 노출되더라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생활 방식을 묘사하는 것에 더 공 들인 모양새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처럼, 우리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다음엔 그곳의 청소부가 싹 청소해 버리듯이 싹 지워지면 그만이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들이닥친 상황에, 내 앞에 있는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라도 말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뜬금없이 알게 된 익명의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주 생경하고 독특한 경험이 아니면서도, 무언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은 확실한 위안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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