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타인이 쓴 수필이나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의 글을 통해 대신 알고 느끼기 위해서다. 물론 그 타인이 생각을 하고 느끼면서, 그리고 그것이 문자를 통해 글이 되면서, 그리고 그것을 내가 어떤 상황에서 읽게 되느냐에 따라서 온전한 전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변이가 되는 그 조차도 나에게는 새로운 간접경험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필이나 에세이를 읽을 것이다.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일기라는 <아침의 피아노>를 읽었다. 이 책은 죽음을 바로 앞둔 사람이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또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지나온 삶에 대해서 생각한 것들을 짧은 메모로 남겨두었다가 엮은 것이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시간은 죽음에 가까워져 가고 생은 저물어 간다. 글에도 그런 것이 묻어나는 것 같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한 슬픈 필치의 폰트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혹은 유난히 짧은 글에 여백이 많은 페이지의 휑한 모습 때문에 괜히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김진영이 쓴 글들 속에서 조금씩 내비치고 있는, 계절이 변하고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글에 옮겨 적으면서 흘러내리는 본능적인 슬픔이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기분이 어느샌가 고여버리는 것이다.
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아침의 피아노>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책이다. 표지는 매우 새파랗지만 그것은 차가움 보다는, 어떤 바다 같은 넓은 생각들의 은유 같다. 사랑하고 감사하게 살라는 말은 정말 평범하고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앞으로 그런 말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안타까움이 보이는 순간은, 죽음을 앞둔 자가 남기는 하나하나의 말들이 얼마나 그에게는 소중한 것일지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김진영은 그런 본능적인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은 정말 수 없이 많지만('죽음을 앞둔'이라는 상황이 얼마나 나의 생각과 모든 생활을 까맣게 지배할지는 정말이지 한치도 상상할 수 없다),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나'에게 충실하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주변에 있었던, 이제는 남겨질 이들을 위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는 것은 아름답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철학자의 글이다 보니 일상적인 메모와 더불어 다소 관념적이지만 정곡을 콕 찌르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게 가장 인상 깊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잠들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튜브를 틀어놓는다. 그의 목소리 혹은 그를 애도하는 목소리들과 함께 잠을 청하고 잠이 든다. 그의 죽음은 나에게 무엇일까." 그리고 이 책은 마지막에 이렇게 끝난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