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그 시절의 여름 <레토>

by 해달

단순하고 깔끔한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제목은 뭔가 발랄하고 경쾌하다. '레토'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눈치챌만한 단서는 하나도 없었지만 왠지 딱 떨어지는 무언가를 의미할 것 같았다. 러시아의 락스타 '빅토르최'의 삶을 다룬 영화 <레토>는 러시아어로 여름을 뜻하는 '레토'에서 따왔다고 한다. 무언가 내리쬐는 태양빛과 반짝이는 모래사장, 한낯의 뜨거운 기운이 가득할 것 같은 이 영화는 오히려 반대의 길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영화는 흑백으로 시작해 흑백으로 끝난다.


사실 한국에서 빅토르최의 존재가 아주 유명하지는 않아서 이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시작해야 할지가 좀 애매하기도 하다. 빅토르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레토>를 본다면 좀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을 것 이다. 완전히 음악 영화도 아니면서, 완전한 전기 영화도 아니고(빅토르최의 불꽃같던 전성기 직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1980년대 소련의 역사 묘사가 자세한 것도 아니다. 즉 <레토>는 당시 러시아의 상황이나 빅토르최가 러시아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본다면 80년대 락스타를 꿈꾸던 러시아의 청년들의 삶과 사랑, 음악이 그저 적절하게 버무려진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레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빅토르최 노래의 가사를 따라 읽다 보면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읽어야 하는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넓게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빅토르최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노래 가사를 따라 보면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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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최가 활동하던 시절은 아직 소련이던 시절, 그러니까 온전한 자유가 없던 시절이다. 그리고 러시아라는 지역 특성상 여름이 밀접하게 연상되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왜 '여름'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굳이 영화 안에서 찾아보자면, 여름에 해수욕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폭발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레토'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그 시절 러시아를 가장 뜨겁고 열정적으로, 어떤 열망을 갖게 해 준 히어로가 바로 빅토르최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레토>가 흑백(이라기보다는 gray scale 같은) 모드로 그 시절을 조명한다는 건, 이 영화가 역사성을 강조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이것이 그 시절의 소련, 그리고 그 속에서 홀연히 빛난 빅토르최라는 존재를 강조하기에 더없이 적절해서 그런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의 제목을 음미하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내 흑백으로 처리된, 언뜻 보면 쓸쓸하고 외로운 영화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알고 봐야 할 것 같다. 빅토르최의 인생뿐만 아니라 빅토르최와 동시대를 살아간 러시아인들이 어떤 여름을 그와 함께 보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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