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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Dec 30. 2018

소련, 그 시절의 여름 <레토>

단순하고 깔끔한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제목은 뭔가 발랄하고 경쾌하다. '레토'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눈치챌만한 단서는 하나도 없었지만 왠지 딱 떨어지는 무언가를 의미할 것 같았다. 러시아의 락스타 '빅토르최'의 삶을 다룬 영화 <레토>는 러시아어로 여름을 뜻하는 '레토'에서 따왔다고 한다. 무언가 내리쬐는 태양빛과 반짝이는 모래사장, 한낯의 뜨거운 기운이 가득할 것 같은 이 영화는 오히려 반대의 길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영화는 흑백으로 시작해 흑백으로 끝난다.


사실 한국에서 빅토르최의 존재가 아주 유명하지는 않아서 이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시작해야 할지가 좀 애매하기도 하다. 빅토르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레토>를 본다면 좀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을 것 이다. 완전히 음악 영화도 아니면서, 완전한 전기 영화도 아니고(빅토르최의 불꽃같던 전성기 직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1980년대 소련의 역사 묘사가 자세한 것도 아니다. 즉 <레토>는 당시 러시아의 상황이나 빅토르최가 러시아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본다면 80년대 락스타를 꿈꾸던 러시아의 청년들의 삶과 사랑, 음악이 그저 적절하게 버무려진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레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빅토르최 노래의 가사를 따라 읽다 보면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읽어야 하는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넓게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빅토르최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노래 가사를 따라 보면 좋은 영화다.


빅토르최가 활동하던 시절은 아직 소련이던 시절, 그러니까 온전한 자유가 없던 시절이다. 그리고 러시아라는 지역 특성상 여름이 밀접하게 연상되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왜 '여름'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굳이 영화 안에서 찾아보자면, 여름에 해수욕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폭발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레토'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그 시절 러시아를 가장 뜨겁고 열정적으로, 어떤 열망을 갖게 해 준 히어로가 바로 빅토르최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레토>가 흑백(이라기보다는 gray scale 같은) 모드로 그 시절을 조명한다는 건, 이 영화가 역사성을 강조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이것이 그 시절의 소련, 그리고 그 속에서 홀연히 빛난 빅토르최라는 존재를 강조하기에 더없이 적절해서 그런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의 제목을 음미하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내 흑백으로 처리된, 언뜻 보면 쓸쓸하고 외로운 영화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알고 봐야 할 것 같다. 빅토르최의 인생뿐만 아니라 빅토르최와 동시대를 살아간 러시아인들이 어떤 여름을 그와 함께 보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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