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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an 08. 2017

바닷마을에서의 새해

올해는 기분이 좋다. 이제 겨우 1주일 되었지만, 올해는 벌써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되고 있다. 회사를 다니는 건 변함이 없고 하는 일이 겨우 조금 바뀐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기분이 불러일으키는 생활의 파장은 아주 크다. 회사 그리고 밥벌이를 위해 하는 일은 내 삶에 큰 변수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가 길었는데 살다 보니 아주 큰 변수가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는 '세밑'이다. 문학적으로 멋있는 수사이기도 하고, 한 해를 초연하게 떠나보낼 수 있게 하는 말이라서 그렇다. 시를 읽다 배운 단어인데 한창 뭐 그런 거에 재밌어할 때라 이유 없이 꽂히기도 했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내가 보낸 '세밑'은 무언가 얼렁뚱땅이었다. 대강 지나가도 물론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 없는 시간들이기는 하지만, 한번 비뚤어지기 시작하니 연말을 보내는 마음은 계속 상해버렸던 것 같다. 철없는 나는 이런 마음을 의젓하게 다시 세우지 못했다. 어쨌든 어떤 방법으로든 이제는 잘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됐다.


기분도 좋고 몇 가지 목표도 생겼다. 해방감은 순간이지만 해방 이후 텅 비어버릴 수 있는 시간들을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고민이 됐기 때문이다. 어제오늘 여행하면서 많이 생겼다. 하나는 여행이고 두 번째는 책 읽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그냥 내가 좋아하고, 기쁨이기도 하고, 행복하기 위하여 정말 필요한 일들이다.


무창포 해수욕장을 거의 8년 만에 다시 가보았다. 노란 반달이 낮게 누워있는 모습이 정말 편안해 보였다. 하늘의 별들은 빈 공간을 남길 여유도 없이 빽빽하게 뿌려져 있었다. 비록 난 못 봤지만 별똥별도 하나 떨어졌다. 이건 거의 칸트가 말한 경외로운 밤하늘의 별빛 수준이었다. 여기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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