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Feb 13. 2017

<컨택트>

웬만해서는 영화를 보기 전에 리뷰를 읽지 않는다. 앞서서 영화를 본 사람의 선지자적(이라 쓰고 '잰 체한다' 읽는) 관점과 선입견에 지배받고 싶지 않아서다. 그런데 <컨택트> 에는 유달리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리뷰 한 줄이 있었다.


'문과생을 위한 <인터스텔라>'.


주어도 서술어도 함축적이고 막연했지만 저 문장은 왠지 나를 이끌었다. 내가 문과생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락을 즐기러 간 공간에서 관객이 제반 지식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전공 카테고리에 따라서 제한된 관객들에게만 유효한 울림이 있다는 게 의문스러웠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의 신작 <컨택트>의 원제는 <Arrival>이다. 어쩐 일인지 번역 제목 '연락' '접촉'이 원제 '도착'보다 더 메시지를 잘 담고 있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사람에게, 집단이 집단에게, 사람이 외계인에게 '도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화합과 이해를 위한 접촉이 필요하다는 게 <컨택트>의 메시지인데, 이것은 타자에 대한 이해의 과정은 물론이고 자기가 만든 세계를 살고 있는 자신에게도 필요한 과정이다.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 사이에는 꿈이라든지 기대라든지 하는 매개를 바탕으로 한 의식의 접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 끝에는 언제나 안정된 '도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런 이해의 여정이 선형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면, 더더욱 연락이라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게 적합할 것이다.


<컨택트>의 주요 내용인 '이해'의 과정은 우리 모두가 예상하듯이 2차원 안에서 가능하지는 않다. 유토피아/디스토피아라는 배경 조건이, SF 영화의 장르적 숙명이 3차원 이상의 시공간을 예정하고 있어서는 아니다. 혹은 동화풍의 SF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쓰는 방식인 추체험적인 외계인과의 환상적인 교감은 2차원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어서도 아니다. <컨택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일상에서도 경험 가능한 물리적인 '도착한다'와는 결이 다르다. 선형적인 시간 개념과 사고의 방식을 전복했을 때 타자와 나의 (예정된) 삶에 닿을 수 있다는 게 <컨택트>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런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영화 내의 여러 장치들이 대부분 적당한 역할로 적당히 고르게 위치할 뿐, 명징한 동기로 존재하면서 영화 전체를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 루이스의 꿈(그리고 꿈에 등장한 딸과 딸의 이름 'Hannah')이 그나마 그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와 같은 단서가 제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루이스의 외계 언어 분석 과정에 자신이 겪은 꿈의 체험이 밀접하게 배치되어야 했을 것이다. 특히나 <컨택트>가 가져다 쓰는 철학적 주제가 언어적인 것이라면 일종의 '꿈의 스키마'로서, 꿈이 제공해 준 화합과 이해에 대한 힌트가 외계 언어를 분석하는 루이스의 작업에서는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막연하기는 하지만) 주인공 루이스는 외계인의 언어를 해독하고 이해하며, 기어이 그 어렵다는 '세계 평화'를 이룬다. 여기서 조금 상관없지만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21세기 강대국 헤게모니가 어떠한 은유 없이 그대로 묘사되어 갑자기 현실 세계가 끼어든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드니 빌뇌브의 이전 작품들에서 보아왔던 강대국의 패권논리와 그로부터 비롯된 '삶의 후유증'을 긴 호흡으로 아프게 보여주는 방식과는 다른 노골적인 방식이랄까.


그래서 <컨택트>는 정말 for 문과생 영화가 맞는가. 딱히 맞는 말은 아니었지만 틀린 말이라고 꼬집고 싶지는 않다. 영화의 이론적 배경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면 보다 엄밀히 정의를 내리는 게(예컨대 'for철학과생') 오해를 덜 불러일으킬 것 같다. 비교문화론은 언어철학의 층위에서도 연구가 가능한 학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컨택트>를 맴도는 주요 키워드들은 우리가 한국 교육-전공 체계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문과다운 것'이기는 하다. 인문학적 메시지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인본주의적 가치들이 영화 내내 맴돈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와 '평화' 그리고 '사랑'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컨택트>의 메타 메시지는 이보다 더 인문학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 루이스의 세계 이해 과정에서 그의 딸 'Hannah'의 이름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은 대칭/순환 구조를 가진 이름이다. 나의 심금을 울렸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는 어떻게 현실을 극복하는가 <재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