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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Apr 06. 2017

러셀, 행복의 정복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일들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방법으로 때로는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인간이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살아간다는 건 역시 불행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원치 않는 생각의 발동으로 끝없는 고민과 희로애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하지만, 생각이라는 이 위대한 능력 덕분에 자신을 고양하고, 또 많은 아름다운 가치들을 마음으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의 궁극엔 무엇이 있을까. 보편적으로 이야기하면 역시 '행복'이 아닐까. 이 막연하면서도, 가장 이루고 싶고 또 가지고 싶은, 언제나 그 상태인 채로 살고 싶은 것이 바로 행복이다. 나는 그렇다. 딱히 불행한 삶을 살아온 건 아닌데, 늘 행복하고 싶다. 행복이란 개념을 아는 인간으로 태어났다니 문득 이런 사실이 행복하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은 행복하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러셀은 대학 1학년 1학기 때 선생님 같은 역할로 첫 교과서에서 봤던 철학자이다. 러셀의 언어는 이때부터 나에게 이런 역할로 다가왔고 이런 믿음으로 각인된 사람이다. 게다가 철학 언어로 이야기하는 행복의 개념에 더불어서, 행복하기 위한 매우 현실적인 방법을 동시에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의 책이라 역시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스치듯 읽었지만 그땐 행간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보다 어렸던 그때엔 행복이라는 것을 좀 엉뚱한 세속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땐 행복이란 게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형태로, 사회가 만든 어떤 절차를 남들과 똑같이 밟으면 얻을 수 있는 줄 알았다(이건 결국 내가 해낼 수 있는 행복의 방법은 아니었다).


<행복의 정복>을 읽으면서 느꼈던 두 가지의 놀라움이 있다.

이건 놀라움이면서도, 공감의 상태에서 받아들인 잠언 같은 것이다.



첫 번째는 스스로를 행복할 수 없게 만드는 인간 유형에 대한 설명. 사색이 극도에 달했을 때의 나를 99% 묘사하는 내용이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나는 한때 자아비판이 거의 습관이 된 사람이었다. 반성이라는 핑계로 자책과 채찍질로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심한 시절이 깊었다. 청교도적인 삶, 피해를 주지 않는 삶, 삶은 고통이지만 혈혈단신 그 고통을 이겨내는 인동초 같은 고매한 삶이 정말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하는 모습인 줄 알았을 때엔 이런 게 행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선을 넘어선 성찰은 결국엔 스스로에 대한 죄인이라는 낙인을 연거푸 찍어 죄인을 만드는 일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내가 말하는 죄인이란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탓하며, 만일 그가 종교인이라면, 이를 하느님의 비난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아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아상은 실제의 자기에 대한 자식과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두 번째는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 '관심'에 대한 이야기이다.

위 내용과 연결이 되는 부분도 있긴 하다. 내면으로 파고들어 그저 나 자신에 대해서만 무한으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 관심을 돌리고 관심을 줘야 한다. 인간은 정말이지 여러 종류의 고통과 싸울 수밖에 없는데, 이 문제는 생각보다 많이 '고독' '외로움'과 얽혀있다. 이건 사람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세계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그리고 사람들, 친구들, 세상의 많은 재미있는 일과 풍경들은 그동안의 경험이 그러했듯 새로운 시간에 나에게로 와서 행복이 된다. 관심이라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시간의 경험은 새로움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행복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권태롭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그렇게 하루하루 새롭게 태어나고 있고, 그런 세계를 인식하는 나도 그렇게 된다.


행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사는 사람이자 자유로운 사랑과 폭넓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며 이러한 사랑과 관심을 통해, 그리고 다음에는 그의 사랑과 관심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확보하는 사람이다.


여행을 가서 더욱 이런 생각이 와 닿았던 것 같다. 여행이란 늘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은 나에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다리는 퉁퉁 붓는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옆으로 완전히 꺾인 목은 아프다. 저가 항공이라서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았다. 싸구려 이코노미 좌석이란 이렇게 사람의 신체를 경직되고 메마르게 만든다.


하지만 그 비행기 안에 앉아있는 나의 생각만큼은 나를 가장 행복한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좁디 좁지만 아늑한 나의 공간이 좋다. 책을 읽는 것도, 불편한 잠을 자는 것도, 주야장천 보이는 창밖의 구름과 햇빛과 밤의 어둠도 좋았다. 더운 나라에서 저마다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언어를 순간 엿듣는 것도 좋았다.


여행지에서의 시간도 너무 좋았지만, 이 시간 속에서 이 책을 읽었다는 게 너무 좋았다. 10년 만에 잠깐 들른 곳-1시간 있었던 타이베이도 너무 좋았다.



대만은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보고 싶은 누군가가 그저 일상을 살고 있을 것 같은 곳.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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