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Apr 07. 2017

벚꽃

꽃이 피는 걸 보니 정말로 봄이 왔나 보다. 오늘 출근하면서 동네 길가에 핀 벚꽃과 목련, 개나리와 진달래를 봤다. 매년 봐도 예쁘고 언제 봐도 설렌다. 

벚꽃을 봤던 많은 시간들을 떠올렸다.

시간을 떠올리는지-사람을 떠올리는지-나의 어렸던 웃음을 떠올리는지

...

이도이동 혜성 아파트 앞에서 안개와 함께 갑자기 다가온 벚꽃.


용산 래미안 앞에서 봤던 벚꽃

잠실 5단지 주공 아파트 안에서 봤던 벚꽃

석촌호수에서 봤던 벚꽃

제주 종합운동장에서 봤던 왕벚꽃

제주대학교 앞에서 봤던 벚꽃

제주 이도이동 마을에서 봤던 벚꽃

제주 중앙여고 안에서 봤던 벚꽃

제주 이도이동 혜성 아파트 버스정류장 앞에서 봤던 벚꽃

탄천에서 봤던 벚꽃

판교에서 봤던 벚꽃

잠실에서 보는 벚꽃

...


작년 봄에는 씨를 사서 흙에 뿌려 꽃을 키웠다.

식물 일기를 쓰고 싶었는데 귀찮아서 못했다. 그래도 매일매일 열심히 키웠다.

꽃피는 걸 두 번 봤고 꽃잎을 두 번 땄다.

꽃잎을 모아서 손톱에 물을 들였고 씨도 받았다.


씨를 다 받고 나니 제주에 다시 갈 때가 도래했다.

이 식물들을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꽃들을 내가 꺾어 죽였다.

옆에서 같이 키우던 바질과 허브도 다 죽였다.

감싸 보듬어주던 화분도 버렸다.

그 여름 중턱에 알차고 또 알찬 햇빛과 비가 쏟아질 때 내가 죽이고 제주도로 갔다.

매일이 눈물바다였을 때 옆에서 가장 친구가 되어주었는데.

미안하다.


흙모래 어딘가에 숨어 잘 지내고 있을까?

돌고 돌아 내가 들이 마신 공기의 일부분이 되어 나에게 왔을까?



내 너를 생각하는구나.

대낮에 마을에 핀 꽃들을 보며 짜증을 한아름 안고 들어와 창밖의 한라산을 보고 담배를 피우며 당직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왜 그때의 풍경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그리워질까?

따뜻한 마을에 다시 가볼 수 있게 되다니 기쁘다.

나의 봄이네.

작가의 이전글 러셀, 행복의 정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