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Apr 21. 2017

<베이징, 내 유년의 빛>

오래전 기억을 향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빛을 비출 수 있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매우 흐릿하고 희미하게 남아있으면서도 특정한 순간들은 지극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선명함이란 어떤 사물이 찍어놓은 점들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한 광경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눈을 찌를 듯이 선명하게 발리는 '빨간약'을 처음 보았을 때 라든지, 동네 어귀마다 풍기는 매캐한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 라든지.


생경하기만 한 그런 경험들은 내 삶의 가치관이랄지 아주 무거운 '닻'이 될 만한 사건들은 아닌데도, 왠지 그런 닻과 같은 표식으로 나의 기억에 남아있다. 이런 기억들의 표상은 그들 각자의 영화관처럼 각자의 것으로만 남아있기는 하다. 각자가 가진 그런 유년의 기억들에 그 자신만큼 깊숙하게 들어갈 수 있는 타인은 없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함으로 가끔씩 그렇게들 추억 속으로 들어가서 그 시절을 생각한다는 사실, 가끔씩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쉬다 나오는 것은 모두가 똑같지 않을까.



<베이징, 내 유년의 빛>은 바로 이런 기억들을 하나하나 모은 책이다. 내가 경험한 기억이 아닌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베이징에서 쉬다 나왔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문화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지만, 이 작가가 묘사한 어린 시절의 광경은 무언가 편하게 함께 앉아서 그 시절을 같이 관조하게끔 한다. 막 아름답게 그린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이 책은 이런 유년의 묘사를 그저 기억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그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들어가 쓴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첫인상'으로 다가왔던 그 시절로 다시금 향한 작가의 시선은, 그곳을 향해 처음으로 빛을 비췄던 그 때처럼 밝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가 묘사하는 유년 시절의 모습이 '이미 다 커버린 어른이 된 나'의 입장에서 모두 아는 척을 한다거나 처연한 회고의 방식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처음 보고 경험했던 그 때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이건 타국의 독자가 쉬이 받을 수 있는 인상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쩔 수 없게도 문화가 다르고 세대도 다른 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나의 경험과 취향이 반영된 편애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긴 하다. 대학생 때 1년에 한두 번 이상은 중국을 꼭 갔었다. 그 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베이징의 후퉁은 정말이지 나를 그 시절로 데려다 놓는 것 같았다. 그 언젠가 음력설에 베이징 어느 골목 후퉁에서 홀로 폭죽을 보며 섣달그믐을 맞이했던 적이 있다. 새해 아침이 되었을 때, 골목의 어느 전화방에 들어가 동전 몇 개를 주고 엄마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던 때가 생각이 난다.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후퉁과는 또 다른 기억이기는 하지만, 그때의 그 외로운 새해 첫날의 도시가 유달리 많이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에 찍힌 점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모두 나보다는 훨씬 커 보였던 그런 광경들. 이런 두 가지의 크고 작은 경험들은 지극히 파편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하나하나 모아서 생각하다 보면 그것이 바로 내 유년시절의 영화 같은 기억으로 연결되가도 한다. 이런 기억들을 책으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도 한 번은 해본 것 같다. 이런 선명한 기억이나 추억으로 다시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은 동기가 필요한 나 같은 사람에게(비록 중국 작가가 쓴 책이지만) 괜찮은 책이 될 것 같다.


+이 책이 더욱 인상깊었던 이유는 역자가 책 말미에 후기를 남기면서 허우샤오시엔의 <동년왕사>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보고 어찌 이 책을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ㅇㅇ섬으로의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