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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04. 2017

의미 부여 없는 부여로의 여행

부여는 부여로 족하다

삶을 사는 매 순간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살지는 않는다. 일상은 그냥 덮어놓고 영혼 없이 사는 게 가능한 무색무취의 순간들이니까.


그런 일상 속에서 여행이라는 가끔의 기회가 찾아오면, 그땐 뭐라도 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진다. 이전까지는 이런 생각이 컸다. 일상이 아닌 특별한 순간들이니까. 의미가 없으면 이렇게 여행에 투자한 것들이 아까워서 그랬던 것 같다. 아니면 무의식 중에 이런 이유 같은 게 있어야 나중에 기억하고 회고하기가 쉬워서 그랬을 수도 있다.


정말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특별한 기억과 의미를 새기고 싶다면 뭐 그렇게 하면 된다. 여행을 하면서 명징한 수단과 도구를 쓰면 된다. 돈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소비하면 된다. 쇼핑을 막 한다거나, 이벤트를 산다거나 혹은 만든다거나. 이것만큼 기억을 쉽게 사는 일은 없다.



올해 계획인 한 달에 한번 여행하기를 하면서 "여행을 왜 하는가"에 대하여 여행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일상 속 색다른 경험을 위해서인가?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인가? 뭐든 좋은 게 좋은 거지만 여행은 정말이지 '그냥' 가는 거구나 싶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 내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든 내가 생각을 하고 느낄 수 있으면 된다'.


부여로 여행을 온 이유는 도시가 작고, 거리에 사람이 없다는 식의 후기 때문이다. 동네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되었다는 건 여기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


아침에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잠실역에 내려서 서점에 들러 책을 하나 샀다. 마침 내가 궁금했던 내용을 알려주는 책이 어제 서점에 도착했다고 해서 갔다.



버스를 타러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가슴이 뛰었다. 공항과 터미널은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일 수밖에 없다. 남부터미널이 있는 서초동은 예전에 살던 곳이기도 하고, 예술의 전당 갈 때마다 가는 곳이라 더욱 정겹다. 다시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터미널의 그저 그런 음식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된 딱 그만큼의 서빙이다. 그런 가벼움이 좋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 앞서 출발한 부여행 고속버스가 고장이 났다고 한다. 공주쯤 지날 때였나 길에서 기다리던 앞선 버스의 승객들을 태워서 갔다. 이들을 입석으로 태우고 결국 부여까지 갔다.


부여 터미널에 도착. 입석 손님들은 그 아무도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고(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냥 다들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읍내에 들어서니 강원도에 살 때 익숙하게 보던 딱 그런 풍경들이 보였다. 21세기의 얼굴을 한 상점은 오로지 편의점뿐이다. 이불집, 세탁소, 다실('다방'아님)이 한갓지게 있고 아파트 단지는 딱 하나 봤다.


도로명 주소는 그야말로 고도의 유산들로 도배되어 있다. 백제, 성왕, 사비... 정말 많다.


길에 다니는 사람이 정말 없다. 상점 안에도 사람들이 있지는 않다. 이런 공간의 틈과 이런 길을 걸어보려고 왔다.



걸어서 많은 곳을 반나절만에 다 돌았다. 그냥 걸어 다닐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박물관, 정림사지, 낙화암 다 보고 왔다. 문화재마다 붙은 수많은 설명문을 봤는데(눈에 걸린 건 다 봤다). 오타도 비문도 정말 많았다. 개중엔 시인의 시 구절에 오타를 낸 것도 있어서 정말 난국이구나 싶었다.


이 곳의 음식은 칼국수와 짜장면이 제일 많다. 여름이라 콩국수도 보인다. 뭐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꼭 뭐가 있을 필요는 없다(뭐라고 할게 꼭 없는 회사 동네도 꽤 나쁘지 않게 맨날맨날 어떻게든 잘 먹고 다닌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다. 평범해도 맛있다.


근데 '밤'이 없다. 밤이 먹고 싶은데.


박물관에서 조각조각 부서져 한두 개의 파편만 남은 백제의 청동 거울을 보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어제까지 윤동주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을 읽었는데, 그의 시 '참회록' 때문인지 지금 이 곳에서 그 청동 거울을 바라보는 나는 나의 어떤 얼굴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왔는가 생각했다. 오래된 조상과 선인, 왕조를 보기 위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싶었다. 나는 충청남도 해안가 음식을 좋아하는데, 엄마가 나 어릴 때 해준 음식 중 그 고장의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엄마의 고향과 엄마가 오랫동안 살던 곳이 있다. 다다음주 엄마 생신을 앞두고 미리 선물도 드리고 다음 주엔 동네 산책도 같이 하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여행하는 장소에 대한 콘텍스트 때문에 그리고 엄마 생신이 가까워져서 엄마 생각을 유달리 많이 하게 되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사람들이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외가에 가면 전~부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데, 여기서는 아직 로컬의 언어들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건 왠지 아쉽다.


위에도 썼지만 이 동네는 '한갓지게'라는 말이 내내 떠오른다.

오늘 본의 아니게 관광이라고 할 것을 다 해버려서 내일은 한갓지게 아무것도 안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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