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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05. 2017

여행에게 하는 약속

오늘은 밥을 먹고, 책을 보고,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을 보다 말다 하는 것도 그냥 아무렇게 했다. 길을 가다 아무렇게 앉아서도 보고,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도 아무렇게나 펴서 본다. 여행을 와서 책을 아무렇게 읽는 일이 신나는 이유는 평상시엔 한 장으로 겹쳐질 세계일 뿐인데 여행 중 펼쳐 보게 되면, 여행 중 겪는 시간들과 겹쳐져 곱절의 세계가 되어 쌓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풀어헤쳐 보면 평상시 출퇴근 도중에서 읽는 것으로 가정했을 때보다 더 복잡하게 해석될 수 있는 기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시간들은 그저 그 시간만으로 신나는 시간들이다.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는 친절하기도 했지만 정말이지 겸손하기 그지없는 바로 그 충남 방언을 쓰셨다. 낮에 오일장을 갔을 때에도 많은 할머니들이 충남 방언을 썼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부여의 음식은 평범했지만 음식을 먹는 그 공간들은 전부 다 나에게 편안해서 아무래도 좋았다. 식당에 나 혼자만 있을 때도 있었고 나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을 주는 곳도 있었다. 김치가 너무 맵기도 했다. 그런데 맛이라는 것은, 음식에 대한 만족이라는 것은 먹는 그곳의 편안한 공기가 함께 만들어서 감각의 끝에 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도 없어도 괜찮고 양이 많아도, 매워도 괜찮다. 천천하기만 해도 좋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한 숟가락씩 느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음식의 주변으로 아무것도 몰아치지 않는 잔잔함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깊은 맛을 준다.


내일은 신동엽 시인의 문학관을 보고 돌아간다. 내일에 가장 좋을 풍경들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건 항상 슬플 수밖에 없지만 이런 아쉬운 마음이란 '다음에 올게' '또 가야지'를 기약하게 해서 다른 가능성과 기회를 스스로에게 무한대로, 반복해서 줄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된다. 바늘 땀이 하나 들어가 버리면 저 밑으로 꼭꼭 숨어버려서 아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또 어떻게든 위로 뚫고 나오고 싶어서 뾰족한 머리를 어떻게든 들이밀어 다음 스텝으로 나온다. 바늘은 또 그렇게 주욱 길게 늘어진 실을 부여잡고 다음 땀을 이어 나간다. 


나는 사람에게는 약속을 거의 하지 않는데 여행에 대한 다음을 기약하는 것만큼은 늘 가장 걸고 싶은 약속이다. 또 올 수 있겠지(혹은 다른 어떤 곳이라도).


1년 정도 걱정하고 있던 건강에 대한 근심이 사라졌다. 좋아지는 신호를 보았다.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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