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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l 02. 2017

만섭의, 안재홍의 강력한 힘 <족구왕>

한 명의 희극형 히어로가 러닝타임 내내 희로애락을 겪으며 슬랩스틱 원맨쇼를 벌이는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 중 하나이다. 나에게 이런 영화는 거의 장르 수준으로 특별하게 분류된다(단순 히어로물이 아니다!). 이런 장르 구축의 주춧돌은 누구에 의해 쌓였겠는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주성치이다. 가히 이쪽 장르의 마스터이자 대인이라 칭할 수밖에 없다.


이쪽 장르의 원류는 역시 일본 만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림이 아닌 영상 안에서 주인공이 만화처럼 박제된 듯 비정상적인 시간을 점유하고 있어도 어색하지 않음을 가르쳐 준 것은 역시 주성치이다. 



이런 성향을 가진 관객이 <족구왕> 같은 영화에 호감을 가질 가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기도 하다.


 <족구왕>은 안재홍에 의한, 안재홍을 위한, 그리고 안재홍의 영화라는 식으로 개봉 당시 인터넷에서 회자된 것 같다. 마치 그 시절 주성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희열을 줄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제목까지 '족구왕'이라 하니 <소림축구> <파괴지왕>이 떠오른다. 소재는 족구이지만 예상되는 어떤 그림들은, 혹은 흐름들은 주성치 영향 아래의 클리셰를 때때로 시전하고 있다. 영화가 이렇게 대인의 영화를 대놓고(?) 오마주를 하면, 우리는 그 감독과 배우를 같은 뜻을 가진 동인으로서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조금 슬퍼지는 것은 사실이다. 상당한 핍진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상당한 사회적 핍진성. <족구왕>의 결말은 이렇게 죽자 사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했던 목표에 대한 쟁취 실패와 제도권이 만든 서열을 거스를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고, 그 서열에 자발적으로 회귀하고야 마는 비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러니까 <족구왕>은 '주성치적' 장르의 역사와 영향 아래 있기는 해도, 우리는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주변을 바라보며 슬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요즘 실생활의 어떤 순간들에서 사람들의 희극적인 순간들을 발견할까? 단순히 루저의 좌충우돌이 재미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루저로 표상되는 영화 속의 많은 삶은, 사실 현실에서는 궁핍으로 표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궁핍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창조적으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각자의 해석이 부여되면 이것은 도리어 해학이 된다. 결국 이 영화를 만든 동기는 단순 히어로물에 대한 창작욕이 아닌, 우리의 세상이 이런 히어로의 지속적인 탄생을 원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영화의 내용을 나열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지만) 주인공 만섭은 군에서 제대한 후 학기 등록을 하였지만 등록금이 없어 등록 취소가 될 위기에 처한다. 게다가 그토록 좋아하는 족구를 할 수 있는 족구장까지 없어졌다. 이런 사건들을 통과하면서 만섭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 신념에 대한 지적과 비아냥을 주변으로부터 여럿 듣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적이냐고? 복학생이 주인공이라 하면 으레 예상하는 취업과 직업 선택에 대한 것들이다('공무원', '토익'이라는 단어로 쉽게 형식화 된다). 


단지 이것뿐만일까? 취향과 취미에 대한 것까지 주류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주류적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만섭의 세대에서의 주류성은 이성교제 시장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한 것을 포함한다. 요즘에 누가 족구 하는 사람하고 사귀겠냐고.. 하지만 만섭은 히어로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주저 없이 좋아한다. 이런 만섭의 강력한 힘은 영화를 내내 견인하는 동력이 되고, 결국에는 교내 체육대회에서 족구 1등을 거머쥐며 족구왕이 된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이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에서는 족구왕이 되어서 족구선수가 된다거나, 미녀가 족구 하는 아재 같은 복학생을 좋아한다거나, 족구 히어로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족구 결승전, 최후의 한방을 위해 만섭이 군화를 갈아 신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족구왕>의 괄호 쳐진 결말은 각자가 알아서 상상할 수밖에 없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택할 수밖에 없는 구습, 혹은 제도가 만든 질서에 만섭도 결국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그래도 유쾌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 안재홍이 나와서일 것이다.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그의 원맨쇼가 생각보다는 많이 도드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희극형 히어로를 내세운 영화로서 조금 더 만화적 상상력을 액션으로 전시하는 것이 이쪽 장르의 미덕이라면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절제한 이유는, 이런 오버 연출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받아들이는 동세대 관객에 대한 공감의 맥락도 고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안재홍이기 때문에 <족구왕>은 가능했을 것이다. 

똘끼 발랄 히어로의 유쾌함과 진짜 복학생 같은 사실감, 양 극단의 장점이 한 배우의 호연 덕분에 동시에 표출이 되었기 때문이다. <족구왕>을 본 이유도, 보고 나서 하고픈 말도 사실은 안재홍이라는 배우에 대한 찬사를 남기고 싶었다. 선호하는 취향에 대한 것이기는 한데 안재홍은 잘생겼기까지 하다. 

<족구왕>에서 안재홍의 원맨쇼의 완결성 언급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안재홍의 원맨쇼를 위한 알찬 영화가 앞으로 더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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