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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뜻지 May 02. 2022

투명 짝꿍

같은 반이지만 만나지 못하는 우리

 실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된다. 체험학습 진행이 가능하며, 특별실 사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교실에서는 모둠 활동 등 협동학습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 드디어 아이들에게도 제대로 된 짝꿍과 모둠이 생기는 걸까?

 이제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온전히 돌아가게 되는 걸까?


짝꿍 있는 교실


 아이들이 5월에 앉을 자리배치표를 정리했다. 이젠 더 이상 시험 대형이나 거리두기 대형으로 자리를 배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살짝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한 것을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에 대한 기묘함.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해진 시간들

 코로나 상황이 일시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2020학년도 3월에는 등교 자체가 연기됐다. 메르스 때처럼 약간의 휴업 기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휴업 기간은 기약 없이 연장됐고 학교 현장은 우왕좌왕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4월 중순이 되어서야 초유의 온라인 개학식을 하게 됐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과밀학급이었다. 내부 회의를 거쳐 학급 분반, 주 1회 등교 방식을 채택했다. 32명 학급 아이들을 출석번호와 성비를 기준으로 A조 16명, B조 16명으로 나누었다. A조 아이들은 목요일에만 등교했고, B조 아이들은 금요일에만 등교했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나흘 동안, 아이들은 e학습터에 담임교사가 업로드한 온라인 콘텐츠를 보며 가정에서 온라인 수업을 했다.

 학년말에 통계를 내어보니, 아이들이 1학기 동안 대면 수업을 위해 등교한 날은 11일에 불과했다. 1학기가 끝날 때까지 A, B조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설령 같은 요일에 등교하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1주일에 한 번 만날 수 있었고, 그 마저도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의 반만 보는 사이였다. 한 학기가 다 지나가도록 같은 조 아이들조차도 서로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했다. 명목상으로 같은 반이었을 뿐, 한 공간에서 온전한 만남을 갖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ver15. 교육과정 속에서 살아남은 행사

 코로나로 인해 학사일정은 수없이 변경됐다. 현장체험학습, 생존수영 수업, 외부강사 연계 악기 수업, 소방서와 함께 진행하는 재난대응훈련 등.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연례행사를 처음부터 전면 취소할 수는 없었다. 대략 2주 정도의 텀을 두고 발표되는 교육부의 지침을 확인하며 행사 일정을 연기하고 날짜를 재조정했다. 10개 학급의 행사 시간표를 끊임없이 조율하며, 나는 전처럼 교실에서 리코더 수업을 하고 다 같이 민속촌으로 체험학습을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보 같은 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정한 교육과정이 ver.15가 된 순간, 나는 더 이상 교육과정을 고치지 않기로 했다. 


 난도질당한 수많은 학교 행사 중에서 '친구 사랑의 날'은 살아남았다. 

 '그래, 아이들이 비록 일주일에 한 번밖에 학교는 못 나오지만 '친구를 사랑하는 일의 가치'를 알려주는 건 학교가 해야 할 일이지.' 

 아스라이 사라져 간 수많은 학교 행사들 속에서 살아남은 '친구 사랑의 날'이 좌초된 난파선 위의 나침반과 같이 느껴졌다.


 평상시의 '친구 사랑의 날'에는 아이들과 같이 여러 가지 놀이도 하고, 작은 간식도 나눠먹고, 아웅다웅 함께 지내온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고맙고 미안한 친구가 어찌나 많은지 몇 장이고 편지지를 더 가지러 나오던 아이들.  

 코로나 시대의 친구 사랑의 날이라... 당시(2020학년도) 아이들은 학교에 채 5번을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짝 활동이나 모둠활동 등 친구와 함께하는 활동적인 놀이는 그림의 떡이었다. 씁쓸하게도 서로 교류가 없다 보니 친구에게 크게 고마운 일도, 미안한 일도 없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친구 사랑의 날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나의 투명 짝꿍에게

 어차피 같은 조 아이들끼리도 서로 모르는 상황이니, 더욱더 모르는 다른 조 친구들에게 친구 사랑의 날 편지를 써 보기로 했다. '난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는 마음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목요일에 등교하는 A조 아이들은 금요일에 등교하는 B조 아이들을, B조의 아이들은 A조의 아이들을 무척 궁금해했다. 자기 옆 자리의 빈자리를 채울 금요일의 친구를 궁금해하며, 자신이 배운 것을 B조의 친구도 배웠는지를 물어보던 아이들. A조에는 어떤 아이가 있냐던 물음들.


 "지금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코로나 상황이고, 우리 반은 인원수가 많아서 이렇게 분반을 하게 되었어. 당장은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A조도 B조도 모두 같은 반 친구야. B조 친구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도 좋고, 너에 대해 설명해주어도 좋아. A조는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해주어도 좋고. 본 적 없는 같은 반 친구지만 따뜻한 마음을 담아주었으면 좋겠어."


 우리는 지금 떨어져 있지만,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약 없는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 보자고 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은 꽤나 정성 들여 편지를 썼다.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A조 아이들이 B조 아이들의 책상에 올려둔 편지들을 몰래 읽어보며 나는 무언가가 목 밑까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A조 아이들이 B조 아이들에게 쓴 편지


 

B조 아이들이 A조 아이들에게 쓴 답장



 모든 아이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몇몇 아이들의 답장과 그에 대한 답장은 '친구 사랑의 날' 행사가 끝나고도 한동안 쭉 이어졌다. 같은 교실, 같은 반, 그러나 보지 못하는 친구. 나의 투명 짝꿍에게 보내는 편지.

 당시 나는 여러 가지 일로 몹시 지쳐있었고 대체로 비관적이었는데, 아이들이 서로의 투명 짝꿍에게 보낸 편지를 몰래 열어서 보는 일은 팍팍한 현실의 몇 없는 낙이었다. 유독 힘든 어떤 날에는 아이들 편지를 보면서 '가여운 꼬마들, 너희는 결국 못 만날지도 몰라....' 하며 냉소적 감상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 5월 교실의 자리 배치표에 짝꿍 자리를 만들어 본다.

 투명 짝꿍이 진짜 짝꿍이 되는 날을 진심을 다해 기다려온 아이들의 단단한 마음은, 비관적인 한 어른의 나약한 냉소를 가벼이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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