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같은 결혼을 꿈꿨다

진작할껄, 결혼

by 이상한 N잡러


4남매 중 첫째인 나는 20년 넘도록 북적북적한 집에서 살았다.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해 여섯 식구가 생활하는 공간은 늘 좁았고 그래서인지

자는시간을 제외하곤 시끌시끌하고 정겨웠다.

유독 예민했던 나는 스무살이 넘어서도 사춘기문제아 같은 생각을 갖곤 했는데

그 중 가장 간절했던 건 조용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것이었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좋아는 하지만 시끄럽고 사람이 많은 건 딱 질색이었다.

어쩌다 더블데이트를 하거나 아는 지인과의 약속이 생기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간추려 만나는 게 편했고 남자친구도 그런 내 의견을

존중 해 주었다.


사람이 많은 곳의 공통점은 누구나 한번쯤 가봤다는 맛집 또는 근사한 데이트장소.

뭐니뭐니 해도 데이트의 핵심키워드는 '로맨틱' 인데 우리가 선호하는 곳은 장사가 안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구석 골목식당이나 카페였다.

먹고 싶은 돈까스를 파는가게면 그저 만족했고 아메리카노가 있는 카페면 그저 좋았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인건지, 나를 위한 배려가 넘치는 사람인건지 7년동안 나름 평화로운

연애를 유지 해 온건 남자친구의 덕이 컸다.


한가하고 조용한 곳에 오면 숨이 더 잘 쉬어지는 것 같았고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에서

이야기 하는게 더 재미있었다.

딱히 비밀스런 이야기도 아니었고 은밀한 연애를 해야하는 것도 아닌데 우린 구석지고

조용한 곳이 좋았다.


나름 장기연애 커플이다보니 오래 연애하는 비결은 뭐냐

권태기는 없었냐

주로 어디서 뭘 하냐 궁금해 하는 지인들도 더러 있었다.

그럴때마다 말문이 막히곤 했는데 그 이유인즉슨 다른 커플들과 별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글쎄, 사람 많은 곳은 잘 안가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까.


'우리 주말에 어디서 만나?'

'영화는 저번 주에 봤으니까 이번엔 공원피크닉 어때?'

7년차 커플이라하면 안 가본데 없고 안 먹어본 음식도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단골 해장국집과

동네 공원산책 코스는 뻔하디 뻔한 코스였다.

그래도 만날 때마다 각자 보낸 하루는 다르니까.

서로 하고싶은 이야기 주제는 매일 바뀌니까.


주변에선 은근히 우리 커플의 미래를 궁금해 했다.

남자친구는 서른살이 넘었고 난 서른살이 코앞이니 연애는 그만 하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헤어지긴 싫고 결혼은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결혼에 대한 주변 이야기는 흥미롭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인이나 친구에게서 듣는 결혼은 꽤나 진지하고 거창한면이 많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있노라면

이 남자를 사랑하더라도 결혼은 어렵겠구나, 결혼은 꽤나 복잡하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결혼식을 앞두고 하는 상견례부터 결혼식날 입을 드레스까지 함께 상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1년을 준비해도 모자라다니.

도대체 얼마나 완벽히 준비해야 한단말인가.

처음 만나 연애할 때 처럼 결혼도 새롭게 시작 하는 것이니 설레고 로맨틱할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일찍부터 난 결혼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멋진샹들리에가 있는 결혼식장, 마음에 쏙 드는 드레스, 연예인 못지않은 결혼화보촬영.

그 과정에서 냉정한 현실이 마음을 쓰리게 하더라도 결혼은 분명 연애하듯 설레이고

웃을 일만 가득할거라고 되뇌였다.

소소한 일상이 뭐 별거겠어.

상상 속 결혼은 연애보다 몇십배는 더 낭만적이었다.


인프라 좋은 전세 아파트가 아니여도, 그럴싸한 최신가전제품 대신 50% 할인이 넘는

이월상품이여도 낭만은 돈으로 살수 없는거니까.

내가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이었나 싶었지만 남들 만큼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양심상

마음가짐이라도 소박해야지 않나 싶었다.


결혼을 하고 가장 먼저 느낀 건 해방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취미라면 무엇이든

내가 먹고 싶은 거라면 무엇이든

내가 자고 싶을 때면 언제든

평생 내 편이 되주겠다는 남편이 옆에 있으니 내키는 대로 뭐든 할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남편과 언제든 여행을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결혼은 연애보다

더 자유롭고 로맨틱한 일상이었다.

결혼 하고 한참동안은 평생 둘이서 여행만 다니며 살고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는데 그게 실현이 됐든 안됐든 둘의 생각이 같으니 언젠가 이뤄질 것만 같았다.

구속받지 않는 둘만의 자유로운 일상이 결혼 이라면 진작에 했을걸 하며 말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생각은 달랐다.

하루 빨리 둘에서 셋이 되어야 하고 넷 까지 되면 더 좋은 게 결혼생활이라며

몇번이나 듣고 또 듣는 이야기였지만 생각이 다르니 귀에 들어올리 없었다.

직업특성 상 아이들과 지내는 게 일상이다보니 지칠 때도 많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 이었고 좋아하는 일이다보니 다른 일을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내 직업에 대한 고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그렇게 예쁘면 내 자식도 더 빨리 낳고 싶지않아?'

남의 일이면 누구나 그렇듯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난

복잡하고도 알수 없는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없었다.


특히 학부모의 그늘진 얼굴을 볼때마다 결혼을 해서도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면

저렇게 불행 해 질수 있는거구나 싶기도했다.

아이 챙기느라 모자와 편안한 옷은 기본이고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은,

엄마로써 그들을 이해할 수 없지만 같은 여자로써 어딘가 안쓰럽고 불쌍했다.

'난 힘든 일상이 훤히 보이는 일은 애초에 하지 않을거야'

자신만만하게, 그리고 그런 다짐을 하는 내가 꽤나 똑똑하고 현명해보이는 것 처럼.


'다를 바 없어, 우리에게 결혼은 7년동안 평화롭게 지내 온 '연애'에서 '결혼' 이라는

키워드로 바꼈을 뿐이야'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한편으론 정말 그들은 불행하기만 한 걸까

팍팍하고 숨쉴틈 없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도 기쁨은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하는 단면은 행복하지 않을까

숨막히는 결혼처럼 보이지만 엄마를 생각하니 어쩐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1년이나 준비해야 한다는 결혼식을 한달만에 마치고 나는 매일 집에서 남자친구를 만났다.

우리의 결혼은 연애의 연장선같았다.

딱히 큰 위기도, 큰 기쁨도 없이 잔잔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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