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대략 400여 권의 책을 구매하는 것 같다. 이렇게나구매하는데도 늘 읽을만한 책을 찾아 헤매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참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책을 고르고 읽는 방식은 다양하다. 좋았던 책에서 언급하는 책을 구매하기도 하고, 목적 없이 서점에 놀러 가서 눈에 띄는 책을 충동구매하기도 한다. 야마구치 슈가 말한 대로 일본 관련 책을 읽다가 사케에 관한 지식을 파고들어 가는 것 같은 '메토니미적 독서'를 하기도 하고, 아니면 김훈 작가의 소설을 읽다가 글쓰기에 대한 책으로 넘어가는 '메타포적 독서'를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하나가 추가되었다. 바로 독서모임 트레바리에서 전문분야의 클럽장이 선정한 책을 읽는 것이다.
사진 출처: 트레바리
특정 분야에 대한 조예가 깊은 클럽장이 비전문가를 위해 선정한 책이니 좋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 성공률이 꽤나 높다. 그래서 틈이 나면 관심분야의 클럽장이 선정한 책을 읽곤 한다.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88만 과학 유튜버 '1분과학'의 이재범 클럽장이 꼽은 <무경계>다.
이 책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는 것은 나의 능력밖이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정확히는 베단타학파)등의 종교적 지식뿐만 아니라 노장 사상 등의 동양 사상, 프로이트 융과 같은 심리학 등등. 이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책 제목인 <무경계>와 가장 직접적인 내용을 발췌해서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간략히 풀어내볼까 한다.
켄 윌버에 따르면 인간은 세 단계를 거쳐서 경계를 그어왔다. 먼저 '명칭'이다. 사물들 사이에 구분선을 긋고 그것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구성한 다음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고양이' '강아지' '인간'처럼 말이다.
두 번째로는 이렇게 명칭이라는 경계를 그어 만든 사물들의 집단에 '숫자'라는 또 하나의 경계를 그은 것이다. 7이라는 숫자는 위에서 말한 고양이 7마리일 수도 있고, 강아지 7마리일 수 있고, 사람 7명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명칭으로 구획한 집단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집단인 것이다. 일명 경계에 대한 경계 바로 메타 경계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또 하나의 경계를 그었다. 바로 '변수'다. 예를 들어 x + y = z에서 x, y, z는 모든 수를 나타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숫자'가 '모든 사물'을 나타낼 수 있는 메타 경계라면, '변수'는 '모든 숫자'를 나타낼 수 있는 메타-메타 경계다.
그래서 이러한 경계가 어떻다는 것인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경계가 갈등을 일으키고 우리를 망상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경계를 만들면서 사실은 모두가 '하나'라는 지고의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점이다. 예를 들어 시간도 오직 '현재'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미래라는 또 다른 경계를 그음으로써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미래에 올 죽음을 두려워한다. 과학적으로도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래전에 발견되었음에도 이 뿌리 깊은 망상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책의 제목처럼 경계를 없애면 된다. 일단 나부터 시작해 보자. 나의 장점만을 모아서 스스로를 '페르소나'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과 싫은 점이 모인 '그림자'도 받아들여보자. 그리고 팔다리를 움직이고 특정한 생각을 하는 의식적인 '자아'뿐만 아니라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심장박동과 같은 신체까지 하나로 받아들인다. 더 나아가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가 둘이 아님을 깨닫는다. 궁극적으로는 우주 만물이 하나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무경계를 달성한다.
요약할 수 없는 책을 요약하다 보니 평소보다 더 두서가 없고 논리의 비약도 큰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경계'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구분선일 뿐 우주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을 깨닫는다면 우리 모두는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온전한 우주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