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Sep 06. 2023

모두의 콜라보, 아무도의 콜라보


프리드리히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부제는 '모두를 위한,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A book for all and none)'이다. 모두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모두를 위한 책'. 동시대 사람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책이라는 점에서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컬래버레이션(이하 '콜라보')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모두가 콜라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의 콜라보'. 아무나 성공적인 콜라보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무도의 콜라보'이지 않을까 싶다.


콜라보를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브랜드를 신선하게 만들기', '브랜드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매출 늘리기'.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 콜라보를 가장 '잘' 그리고 '열심히' 했던 대한제분의 곰표는 이 세 가지를 모두 달성했다. 오래된 브랜드가 아닌 힙한 브랜드라는 인식을 얻었고,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1020도 아는 전국민적인 브랜드가 되었으며, 하향세이던 매출은 콜라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8년 상승세로 전환했다. 곰표는 콜라보를 시도하는 모든 기업이 꿈꾸는 북극성이 되었다. 


http://www.brand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65


나는 대기업에서 일할 때도 다양한 콜라보를 했고, 현재 작은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콜라보를 하고 있다. 기업의 규모에 따라 콜라보의 방식과 콜라보를 바라보는 태도가 다를 수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대기업 마케터로서의 콜라보


대기업에 있을 때는 그 누구와도 손쉽게 콜라보를 할 수 있었다. 모두가 우리 회사와 함께 하길 원해서 제안을 먼저 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거의 매달 콜라보 제안서 혹은 미팅 요청이 쇄도했다. 내가 먼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특히나 '삼성'이라는 후광효과를 그 누구보다 얻고 싶어 했던 스타트업의 제안이 많았다. 부득이 수많은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중 한 스타트업 대표님은 시간이 흘러 유명 상장사 대표가 되었다(그 당시 나의 판단미스가 아쉽긴 하다).


대기업에 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콜라보는 디즈니코리아와 함께한 '엠비오 X 스타워즈' 콜라보와 IT 스타트업과 함께 진행한 스마트 줄자 콜라보였다. 디즈니코리아와 함께 할 때는 글로벌 회사는 콜라보를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것까지 규정이 있다고?" 싶을 정도로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한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파리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백설공주가 나타나면 다른 모든 디즈니랜드에는 백설공주가 등장할 수 없다는 가이드라인을 책에서 보고 디즈니의 세심함에 감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콜라보도 그러했다. 명확하고 분명했다. 디즈니가 보유한 모든 캐릭터의 일관성은 이렇게 지속 유지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스마트 줄자 콜라보를 통해서는 스타트업의 역동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과거에는 더더욱 정장을 온라인으로 구매하지 않았다. 정장은 몸에 딱 맞아야만 한다는 인식이 있어 매장에 가서 직접 입어보고 사는 게 불문율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스마트 줄자였다. 스마트 줄자를 통해 한번만 치수를 측정하면 연동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정장을 추천해 주는 시스템을 콜라보로 만들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미완성이었던 스마트줄자는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처음 보는 업무 속도였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완성하는 그들을 보면서 대기업과는 다른 스타트업의 열정과 역동성에 크게 놀랐다.  


두 콜라보를 통해 우리 회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신선함'이었다. 대기업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졌고, 매출 또한 급성장하기 힘들다. 콜라보를 하는 세 가지 이유 중에 '신선함'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기업이 주로 신생기업 특히나 힙하다고 알려진 브랜드와 주로 콜라보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신생기업이 대기업과 콜라보를 하는 이유는 주로 '인지도를 높이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다. 요약하면 대기업은 콜라보를 통해 '신선함'을 얻는 대가로 '인지도'와 '매출'을 제공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캠페인마다 브랜드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중소기업 마케터로서의 콜라보


예상하겠지만 중소기업이 다른 기업과 콜라보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앞서 말한 콜라보를 하는 세 가지 이유 중 단 하나라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콜라보를 하는 상대방이 '힙하거나(트렌디하거나)', '잘 알려져 있거나', '충성 고객이 많아서 매출이 많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업이 중소기업과는 콜라보를 잘 해주지 않는데 있다. 대기업에 있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마케터는 더 많은 것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좋은 콜라보를 고민하기에 앞서 어떻게 콜라보를 성사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회사에 돈이 많다면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당수의 콜라보는 수익배분을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때 매출의 몇 퍼센트를 수익으로 나누어줄지를 말하는 RS(Revenue Share)와 매출과 상관없이 최소로 지불하는 금액인 MG(Minimum Guarantee)가 핵심이다. 업계 평균보다 RS와 MG를 높여주면 안 될 콜라보도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돈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이렇게 하기 힘들다.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돈도 부족하고 브랜드도 힙하지 않은 중소기업에게 콜라보는 불가능한 것인가?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 두 가지 대안을 찾았다. 바로 '색다름'과 '맥락'의 어필이었다. 다시 말해 '색다른' 콜라보를 통해 브랜드가 신선해질 수 있고, '맥락'있는 콜라보를 통해 대중이 쉽게 이해함은 물론이고 양측의 고객이 쉽게 왕래할 수 있음을 어필하는 것이었다. 최근에 진행한 아이웨어 브랜드 '클로떼'와 밴드 '무드'의 콜라보 사례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모두의 콜라보 사례다.


클로떼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글로벌 유명 아이웨어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최고 아이웨어 생산 회사인 JCS International의 하우스 브랜드다. 아이웨어 업계에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브랜드다. 다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과, 새로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이 보완점이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콜라보를 했지만 다른 아이웨어 브랜드에서도 많이 했던 것들 위주였다. 패션 인플루언서와의 콜라보가 대표적이었다.


클로떼 컨설팅을 담당하면서 새로운 콜라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뮤지션과의 콜라보가 괜찮을 것 같았다. 많은 브랜드가 진행하는 브랜드 CM송을 만드는 것이 아닌 콜라보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유명 가수와 콜라보를 할 경우 비용도 비용이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아서 제외했다. 대신 신인 밴드와의 콜라보를 생각했다. 그것도 10대로만 구성된 밴드. 밴드 무드와의 콜라보는 그렇게 기획을 하게 되었다.


콜라보는 색다름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나미 매직 스파클링이 대표적인 예다. 필기구 브랜드와 음료 브랜드의 콜라보만큼 이색적이고 색다른 게 또 어디 있겠는가? 다만 맥락이 없는 게 문제였다. 칠판에 쓰는 매직과 마시는 카테고리는 그야말로 맥락 없다. 맥락을 뜻하는 Context라는 단어를 살펴보면 '함께'라는 의미의 con과 '엮다'라는 뜻의 text의 합성어다. 즉 함께 엮을만한, 엮었을 때 빛을 발할만한 콜라보여야 한다. 그런데 '매직'과 '음료'는 함께 엮기가 매우 어렵다. 때로는 위험하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어린아이가 유성매직을 마시게 되면 대형사고다. 고객들이 크게 반발한 이유도 이러한 맥락없음 때문이다. 좋은 맥락을 만들지 못한다면 높은 확률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아이웨어 브랜드 '클로떼'와 밴드 '무드'의 콜라보를 진행하면서 어떻게 맥락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양측 모두 납득할 수 있고 고객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맥락이어야 했다. '보는' 아이웨어 브랜드와 '듣는' 밴드의 접점을 만들어야 했다. '들어보다'에서 맥락을 찾았다. '들어보다'를 통해 감각적 접점을 만들고 이를 확장시켜보기로 했다. 이에 대해서는 콜라보 음원 소개글에서 자세히 풀어냈다.


아이웨어 브랜드 클로떼(Clrotte)와 노래하는 밴드 무드(Mood)의 만남이라니. 낯설지만 새로운 느낌입니다. ‘보는' 브랜드와 '듣는' 밴드의 만남은 감각적 접점이 없어 보이니까요.

하지만 '들어보다'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면 이 둘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관심 있게 듣고 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번 클로떼 X 무드의 컬래버레이션 음원 <Close Up>은 이러한 진심을 향한 교집합에서 출발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인물의 얼굴을 화면에 크게 나타내는 클로즈업(Close Up)은, 누군가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혹은 누군가에게 집중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기법입니다. 시선이 모이고 귀가 쫑긋하는 이 모든 감각을 아울러 오롯이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만 집중하였으면 하는 마음을 가사에 담았습니다.

시선을 클로즈업하는 브랜드 클로떼
청각을 클로즈업하는 밴드 무드

이 두 감각의 조합이 말하는 클로즈업과
여러분이 느끼는 클로즈업을 비교해 가며
<Close Up>에 눈과 귀를 클로즈업 해주세요.

- 무드의 <Close Up (with Clrotte)> 소개글 -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콜라보를 하는 이유는 크게 '브랜드를 신선하게 만들기', '브랜드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매출 늘리기' 세 가지다. 대기업과 다르게 중소기업은 콜라보를 성사시키기 힘들다. 이럴 때는 '색다름'과 '좋은 맥락'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세세한 업무 지시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드넓은 바다를 동경하게 만들어라." 여기서 '배'를 '콜라보'로 바꾸면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요약이 된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bestsellerkap


사진: UnsplashMatteo Vistocco

 






 

매거진의 이전글 맹자 마케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