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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Sep 12. 2023

고수는 이때 빛난다

 

볼링은 참 신기한 스포츠다. 다른 스포츠와는 다르게 초보가 프로보다 잘할 수도 있다. 딱 한 번만 던졌을 때는 말이다.


초보가 생각 없이 던진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 모든 핀을 쓰러트리는 스트라이크가 될 수도 있고, 프로가 던진 공은 아주 미세하게 빗나가 한 두 개의 핀을 남길 수도 있다. 딱 한 번만 던진다고 했을 때 승패를 확신할 수 없는 스포츠가 볼링이다. 심지어 운이 따르는 날에는 초보가 3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기록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었다. 볼링은 이처럼 단기간에는 누가 초보가 누가 고수인지 알기 힘들다.


물론 폼을 보면 대충 티가 난다. 다만 프로 중에서도 엉성하게 보이는 특이한 폼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배운 지 얼마 안 된 사람 중에서 정석에 가까운 폼을 지닌 사람도 있다. 그럼 어떻게 고수를 알 수 있을까? 답은 스페어 처리에 있다.


볼링에서 첫 투구에서 모든 핀을 쓰러뜨리면 스트라이크라고 한다. 두 번째 투구가 필요 없는 것이다. 스트라이크를 기록하지 못할 경우 두 번째 투구를 하게 되는데 이때 남은 핀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을 스페어(spare)라고 한다. 고수는 이때 빛이 난다. 핀이 두 개 붙어 있든 양 끝에 떨어져 있든 고수는 믿기지 않는 정확도로 스페어 처리를 한다. 초보가 스페어를 기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나 핀이 멀찍이 떨어진 경우라면 더더욱 보기 힘들다.  


볼링은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초보가 스트라이크를 기록하듯 누구나 운 좋게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스페어 처리를 하듯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할 때 비로소 누가 고수이고 누가 초보인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살다 보면 운이 따르는 때가 있다. 별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일이 술술 잘 풀린다. 별생각 없이 투자한 주식 종목이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하고, 재미로 시작한 페이스북 채널이 그야말로 떡상을 해서 수백억 원 가치의 사업체 대표가 되기도 한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서 봤던 사례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노력에 비해서 엄청나게 잘 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들도 그때는 큰 운이 따랐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잘되기만 할 때 운이 따르는 것인지 내가 잘하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결과가 좋고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니 스스로가 엄청난 사람이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내가 잘나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 같다. 특히나 어렸을 때는 이러한 착각에 쉽게 빠지고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너무 일찍 성공하면 좋게 죽지 못한다는 무시무시한 뜻의 '소년등과 부득호사(少年登科 不得好死)'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실패를 해야 비로소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이때 고수의 진가가 발휘된다. 실패가 주는 좌절감, 무기력함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지. 모두가 외면하고 안된다고 말할 때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지. 고수는 이 순간 결정된다. 그리고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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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Ella Christe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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