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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Sep 13. 2023

번아웃


컴퓨터 앞에서 난 미친 듯이 일에 몰입해 있었다.


때로는 5시간 넘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밥은 물론이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물을 마시면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아서 목마름도 참았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았다. 워라밸은 필요 없었다. 주 7일 매일 12시간 넘게 그렇게 일을 했다. 주위에서 걱정하고 만류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일이 제일 재밌었다. 일과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된 상태 '일아일체'를 이루었다.


이렇게까지 일했다면 엄청나게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유가 있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은 사실이지만 단 하나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에 몰입해 있었다.


이때 세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게임에 큰 재능이 없다는 것. 두 번째로 나는 생각보다 중독에 약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면 번아웃이 오지 않는다는 것.


"일이 아니라 게임이니까 당연히 번아웃이 안 오지!"라고 반문하는 사람있을 것 같다. 꼭 그렇지는 않다.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이 일로 보이지 않고 놀이처럼 느껴졌다. 하루종일 일 생각밖에 나지 않고, 친구들과 놀 때도 빨리 끝나고 일하러 가고 싶을 정도였다. 일이 다 끝나면 공허해지고 때로는 우울감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일밖에 모르는 삶도 좋지 않을 것이다. 혹자는 도파민에 중독된 워커홀릭(workaholic)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번아웃은 과로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번아웃은 의미 없는 일을 할 때 온다는 것을 알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지?"에 대한 답을 수 없을 때. 일단 나의 경험은 그렇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중 시시포스가 있다. 그는 특이한 벌을 받는다. 큰 바위를 언덕 위로 굴려 올려야 하는 벌이었다. 바위는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러면 시시포스는 다시 처음부터 언덕 위로 바위를 굴러 올려야 한다. 이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사지가 찢기고, 불에 타는 끔찍한 벌에 비해서는 솜방망이 수준의 벌처럼 보인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그 어떤 벌보다 끔찍한 벌이 될 수 있다. 바위를 끊임없이 굴러 올리는 일에 대한 의미가 없다면 매 순간이 번아웃일 것이다.


일을 하는 모든 사람도 시시포스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시시포스와 같은 끔찍한 벌을 받는 것이고, 의미를 찾는다면 근육과 정신력이 자연스레 길러지는 꽤나 재밌는 일을 하는 게 될 수도 있다.


바위를 굴러 올리는 시시포스는 웃고 있었을까, 울고 있었을까? 그리고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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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The 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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