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처음 가본 페스티벌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드넓은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 캠핑의자에 앉아 시크하게 책을 읽는 사람, 무대 앞에서 클럽에 온 마냥 방방 뛰는 사람. 이곳이 공연장인지 공원인지 구분하기 힘들었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흐릿했다. 음악으로 하나 되는 것이 아닌 음악을 즐기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공간이었다.
홍대 인디음악은 당시 내게 생소했기에 아는 가수보다 모르는 가수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그럼에도 좋았다. 새파란 하늘과 푸르른 잔디밭 사이에 있는 나에게 어떠한 멜로디라도 좋게 들렸기 때문이다. 책상을 긁는 소리도 이색적인 고음으로 들릴만한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일반적인 콘서트와는 다르게 공연이 동시다발적으로 이곳저곳에서 열렸다. 선택을 해야 했다.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면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무대 앞에 가서 앉아 있어야만 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한 밴드의 공연 시작 전에 미리 자리를 잡았다. 이미 이삼십 명 남짓의 팬이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공연 시작 10여 분전에 몇 명의 사람이 올라와 악기를 만지작 거렸다. 처음에는 음향을 체크하는 스태프인 줄 알았는데 앞자리의 팬들이 소리를 지르는 걸 보고 밴드임을 알았다. TV에 나오는 아이돌과는 다르게 평범한 외모의 가수였다. 큰 기대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첫인상은 잔잔한 발라드를 하는 밴드 같았다. 사실 페스티벌의 분위기에 취해있었기에 어떤 노래 어떤 장르라도 상관없었다. 발라드라면 연주를 배경음악 삼아서 그곳의 분위기를 즐기고자 했다. 그런데 웬걸? 공연이 시작되자 보컬이 갑자기 모두에게 일어나라고 했다. 엉겁결에 일어난 나는 어느덧 춤을 추고 있었다. 보컬이 시키는 대로 아주 신나게 팔과 골반을 휘저었다. 도깨비에 홀린 듯 처음 듣는 음악에 심취해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이 매력적인 밴드는 소란이었고 나를 춤추게 만든 보컬은 고영배였다.
그 후로도 여러 페스티벌에서 소란을 만났다. 연말에는 소란의 단독콘서트를 가기도 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고영배 특유의 에너지가 좋았다. 유머러스한 말투에 담겨있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은 반드시 유명해진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몇 년 후 TV에도 나오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나만 알고 싶던 가수가 모두가 아는 가수가 되었다.
나의 첫 페스티벌이라는 기억 속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소란의 처음. 그 처음 전에 또 다른 처음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의 책 <행복이 어떤 건지 가끔 생각해>라는 책을 통해.
에세이는 '무엇'보나 '누가'가 더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같은 내용도 누가 말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와닿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가 좋았던 것은 궁금했던 사람, 내적 친밀감이 있는 사람이 썼기 때문일 거다. 소란 이전의 고영배, 내가 처음이라 생각했던 소란 이전의 소란을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고영배라는 가수를 몰랐어도 좋을 만한 에세이다. 뮤지션의 책을 넘어 사업가로서도 와닿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밴드를 만들고 영입한 멤버들이 줄줄이 떠날 때의 막막함.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멤버들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없을 때의 미안함.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포기하고 싶을 때 살며시 나타나 큰 도움을 준 귀인들에 대한 감사함. 사업을 하면서 내가 느낀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 있었다. 이 지점에서는 주책맞게 눈물이 나올 뻔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표지에 그려진 고영배의 미소가 다르게 보였다. 그저 즐거운 상황에서 나오는 미소가 아니라 고되고 힘든 상황을 거치며 생긴 상처가 아문 흔적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행복을 전하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매우 단단한 긍정과 희망을 보았다. 오랜만에 소란 콘서트를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