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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Oct 09. 2023

성공 앞에서 주저할 때 나타나는 현상


대한민국 남자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


'언제 군대를 갈 것인가'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기에 나의 1순위 선택지는 '카투사'였다. 군 생활 동안 영어도 배우고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나에게는 딱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나에게는 카투사만이 답이었다. 2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하기로 했다.


그 당시에는 토익 800점(700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만 넘으면 누구나 카투사에 지원 가능했다. 지원자 중에서 추첨을 통해 뽑는 방식이었다. 경쟁률은 3대 1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토익 점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뽑힐 확률이 높다는 썰이 있었기에 900점 이상의 성적을 갖고 있던 나는 마음 편히 결과만 기다렸다.


대망의 결과 발표날. 충격이었다. 탈락이었다. 과한 비교일 수 있지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빠르게 경험한 것 같다.


일단 부정을 했다(Denial). 결과가 잘못 나온 것이라고. 혹은 내가 잘못 확인한 거라고. 그러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Anger). 주변 친구들은 거의 다 합격했는데 왜 나만 안되냐고! 그러다 말도 안 되는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Bargaining). 카투사를 떨어뜨렸으니 다른 곳은 나부터 합격해 줄 것이라는 망상을 했다. 이내 우울해졌다(Depression). 카투사 합격을 확신했기에 다른 군대를 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 나와 같이 떨어졌던 친구와 공원에서 술을 마셨다.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하다 보니 어느새 카투사를 탈락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Acceptance).


탈락 사실을 힘겹게 받아들였으나 대안이 없었다. 모두에게 마찬가지이겠지만 '영어'라는 언어가 유일한 장점이었던 나에게 2년이라는 공백은 타격이 컸다. 2년 동안 영어를 사용하지 못해 영어가 퇴화된 선배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기에 걱정이 컸다. 그때부터 방법을 찾아 나섰다. 문득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장교'가 떠올랐다. 훈련기간은 길지만 일과 후에는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된 장교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장교로 입대하는 방법을 찾았고, 대학 졸업 후 시험을 보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터디 그룹을 통해 공부를 하던 중 '공군통역장교'라는 게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장교 생활인데 심지어 영어까지 쓸 수 있다니 나에게 딱이었다. 필기시험과 통번역 면접시험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사적으로 준비했고 가까스로 합격했다.


카투사를 떨어지고 공군통역장교로 입대한 이 하나의 사건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군생활을 통해 그때까지 만나보지 못한 초절정 능력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제대 후에는 너무나도 쉽게 대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공군통역장교에서 복무한 덕분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카투사 떨어진 것은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였다. 성공으로 가는 경로를 벗어나는 나를 실패라는 경고음을 통해 바로잡아준 것이다. 이후로도 비슷했다. 카투사 탈락보다 훨씬 더 큰, 실패다운 실패가 이따금씩 찾아왔고 큰 좌절을 기도 했다. 지나고 나서보면 이러한 실패와 좌절은 나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 잡아주는 안전벨트였다.


이처럼 큰 기회가 바로 눈앞에 왔는데 내가 이상한 선택을 하려고 때면 늘 실패를 통해 그것을 제지해 주었다. 그 존재가 '신'인지 '우주'인지 아니면 그 어떤 무엇인지 여기서 분명히 밝힐 수는 없지만 늘 그랬다. 성공 앞에서 주저할 때 나를 뒤에서 떠민 것은 성공이 아니라 크나큰 실패였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한 가지 믿음을 갖게 되었다. 크나큰 실패와 좌절이 오면 성공을 향해 번지점프를 할 때라고. 주저하지 말고 용기 있게 새로운 행동을 할 때라고. 그렇게 요즘 다시 번지점프를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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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Leio McLa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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