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Nov 29. 2023

거절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부탁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예전에는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신발끈을 묶어야 할 때도 옆에 있는 친구에게 절대 부탁하지 않았. 어떻게든 짐을 혼자서 다 들고 신발끈을 묶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부탁을 잘하지 못했다. 좋게 보면 독립적이고 나쁘게 보면 타인이 서운할 정도로 선이 너무도 분명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도 나이가 들면서 변했다.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점점 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사의 지시 때문에, 때로는 가족의 필요 때문에, 때로는 도움을 받아야만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등등. 부탁을 하고 부탁을 받는 것이 예전보다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이번에 <마케팅 뷰자데>라는 책을 만들면서 더더욱 많은 부탁을 해야만 했다. 초고를 작성하고 나서는 타깃 독자에게 피드백을 받아야만 했고, 책의 표지나 디자인에 대한 의견도 많은 사람에게 구해야만 했다. 물론 추천사도 요청해야 했. 이 와중에 몇 번의 거절을 경험했지만 의외로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거절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거절하는 분들이 너무나도 미안해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기분 나쁜 상황은 따로 있었다. 정확히는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았던 상황이 있다. 바로 승낙 이후 책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며칠까지 피드백을 주기로 한 분이 그날까지 피드백이 없었다. 부탁을 한 입장이기도 하고 상대가 바쁠 것이라 생각하고 며칠을 더 기다렸다. 그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마음으로 물어보았는데 상대는 그제야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겠다고 말했다. 모든 일정이 그 피드백에 맞추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난감했다. 출판사 관계자들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돈을 준 것도 아닌 그저 부탁이었음을. 괜찮다고, 염려하지 말라 오히려 상대를 안심시키고 나서 급하게 대안을 찾아 뛰어다녔다.


다행히도 지인 중 한 분이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해서 어찌어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출간일을 전면적으로 미루어야 할 수도 있던 사고였다. 아찔했다. 일이 일단락되고 나서는 안도감과 함께 그분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제목에서는 '기분 나쁜'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정확히는 '안타까움'이 주된 감정이었다. 나름 그분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더 이상 그런 인상을 유지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물론 그분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성격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부탁을 승낙하고 나서 해보려고 했으나 엄두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두가 각자만의 사정이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에 대한 인상이 바뀐 것도 어쩔 수는 없는 것 같다. 이 또한 나만의 사정일 테니까.


이번일로 깨달은 게 있다.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어렵더라도 거절하는 게 맞다는 것을. 승낙했다면 어떻게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타산지석의 계기로 삼아야겠다.


<같이 보면 좋은 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497617



사진: UnsplashBrett Jordan


매거진의 이전글 리더는 좋은 사람이면 안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