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많은 마케터가 모인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이날의 책은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쓴 <슈독>이었다. 그 어떤 마케터라도 할 말이 많은 브랜드이자 책이었다. 예상대로 3시간 40분간 양질의 이야기로 가득 찬 모임이었다. 뒤풀이에서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나는 아쉽게도 사정상 참여하지는 못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의외의 참여자의 입에서 나왔다. 모임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참여자였다. 모임장이 질문을 하자 머뭇머뭇하더니 나이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밝혔다.
나이키를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닌데, 힘들 때 나이키 광고를 찾아보는 편이에요. 뭐랄까. 광고를 보면 힘이 나고 성취감이 생긴달까? 그런 것 같아요.
듣는 순간 '유레카'를 외쳤다. 나이키의 광고 영상은 자기 계발 동영상과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 큰 성취감을 주고 그 순간에는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부여하는 영상. 도파민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나이키의 광고와 자기 계발 영상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측면을 보게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나이키가 말하는 Just Do It(그냥 해)을 사람들이 쉽게 실천하지 못하기에 나이키의 Just Do It이라는 메시지가 더더욱 강력해진다는 것을. 자기 계발을 알아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에 자기 계발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을 말이다.
경찰의 역할 중 하나는 범죄자를 잡는 것인데, 범죄자가 없어지면 경찰은 할 일이 없어진다. 본인의 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본인의 직업이 위험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지만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나이키의 슬로건과 자기 계발 영상의 메시지는 이를 닮아 있다. '도전 정신'과 '주체적 자기 계발'이 기본값이 된 세상에서는 두 존재가 말하는 메시지는 의미가 없어진다. 정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정의를 말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여기서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진다. 왜 우리는 쉽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할까? Just Do It을 하지 못하고 자기 계발 영상을 보지 않고는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단지 게을러서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답은 '구릴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이다.
책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사람 중에 글을 못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글을 쓴다. 마치 대부분의 사람이 걸을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 이유를 물으면 쓰기 싫어서가 아니라 쓰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글을 쓸 줄 아는데 왜 쓰지 못한다고 말할까? 여기서 한 단어가 빠졌기 때문이다. '잘' 쓰지 못해서이다. 본인 기준에서 잘 쓸 자신이 없어서, 다른 말로 자칫 구리게 나올 수도 있는 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책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이 혹은 본인이 만든 작품이 구릴까 봐 선뜻 도전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것 아는가? 내가 만나본 대다수의 작가는 본인의 첫 책이 부끄럽다고 말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책을 냈고 후속작으로 이를 보완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모두 구릴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것이다. 도전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새로운 도전의 결과물이 완벽하다면 그것을 도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해나간다는 것은 실수를 하겠다는 다짐과 다를 바가 없다. 이를 위해 나는 '구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쓴 것도, 독립 출판으로 첫 책을 낸 것도, 출판사와 함께 첫 책을 낸 것도 모두 구릴 수 있는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구릴 수 있는 용기를 갖자고! 그렇다면 Just Do It은 공기와 같은 당연한 것이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