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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an 08. 2024

강릉에서 마주친 세 가지 인사이트

명리학을 공부한 이후부터 연말이면 늘 강릉에 간다.


몇 년 전에 업무 때문에 얕게 공부한 명리학에 따르면 12월(水)에 우리나라의 동쪽에 위치한 강릉(木)에 가는 것은 나(火)에게는 좋아 보였다. 명리학이 맞아서인지 아니면 플라시보인지 몰라도 12월에 강릉에서 목표한 계획은 거의 다 이루어졌다. 나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있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도 있었다.


양자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는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말편자(Horseshoe)를 자신의 별장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천재 과학자가 이러한 미신을 믿는 것이 의아했던 사람들이 그에게 말편자에 대해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저는 말편자를 믿지 않습니다. 다만 말편자를 믿든 믿지 않든 말편자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하더군요." 보어에게 말편자가, 나에게는 12월의 강릉이다.


2023년을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강릉을 방문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과 인사이트도 많이 얻었지만 모두와 명료한 언어로 나눌 수 있는 인사이트는 세 가지를 얻었다. 이를 나누어볼까 한다.



1. 단점을 감추지도 변명하지도 말자

강릉에 위치한 <900달러>


피자가게 <900달러>는 강릉에 사는 지인이 추천한 맛집이다. 첫 방문 때 너무 좋아서 이번에도 꼭 가보기로 마음먹고 다시 방문했다. 연말이라 그런지 아니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런 건지 전과 다른 분위기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Fuck Your Diet'라는 문구였다.


누구나 알고 있다. 피자를 먹으면 살이 찐다는 것을 그리고 피자가 몸에 좋은 음식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단점을 감추려고 하거나 변명하려는 메시지를 종종 보게 된다. '칼로리가 낮은 피자'라든지 혹은 '몸에 좋은 00을 넣은 피자'라든지와 같이 말이다. 이러한 메시지가 특정 타깃에게 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피자라는 본질과 멀어지게 만드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객이 아닌 사람까지 억지로 고객으로 만드려고 함에 따라 기존 고객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메시지랄까?


<900달러>의 'Fuck Your Diet'는 이런 면에서 아주 통쾌했다. 단점을 감추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단점이라 여기는 것을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지향점이자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Fuck Your Diet'라는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으면 오지 말고, 이에 동의하면 단골이 되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단골이 되기로 결심했다.



2. 평효율만을 생각하면 평효과를 망칠 수 있다.

강문해변 카페거리에 위치한 덴켄

첫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평효율'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평효율이란 일정 공간에서 발생한 매출을 면적으로 나눈 값을 의미한다. 그 당시에 백화점에 입점했던 우리 회사 패션브랜드들의 매장 크기도 매출도 천차만별이었는데 이를 하나의 동일 기준으로 비교하기 위해서 '평효율'이라는 개념을 활용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평효율이라는 개념에도 문제가 있었다. 평효율만 생각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브랜드 자산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고객 만족도를 장기적으로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F&B 비즈니스에서는.


강릉시내에서 멀지 않은 강문해변에는 수많은 카페가 늘어서 있다. 대부분의 가게는 조금이라도 평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좌석을 최대한으로 구겨 넣은 듯 보였다. 한산한 시즌에도 정신없어 보일 텐데 연말 성수기에는 어떻겠는가? 사람들까지 가득 차 있어서 정신없는 시장에 온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평효율은 좋을 수 있지만 고객경험은 최악에 가까웠다.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 않았다(물론 단 한 번만 방문하는 관광객이 목표라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다가 평효율은 신경도 쓰지 않은 듯한 유일한 카페를 발견했다. <덴켄>이었다. 책상과 의자가 빼곡하게 들어선 카페만 잇달아 봐서 그런지 낯설었다. 아니 이상했다. '아직 다 짓지 않은 카페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정도였다. 공간에 적응을 하니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공백이 여유를 주었고, 여유는 힐링을 선사했다. 고객들이 겉옷을 편하게 걸 수 있는 행거,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거울을 볼 수 있게 한 소소한 디테일까지 눈에 들어왔다. 평효율은 모르겠지만 고객만족은 최고의 카페였다. 나만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평효과'는 최고의 카페였다. 다시 강문해변을 방문하게 된다면 나에게 최우선 순위는 무조건 덴켄이다.



3. 독립서점 같은 대형서점 고래책방

고래책방

고래책방은 강릉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형서점이다. 대형서점인데 독립서점의 분위기를 간직한 독특한 서점이다. 취향을 자극하는 공간이라 강릉에 방문할 때마다 들러서 눈길을 사로잡는 책을 구매하곤 했다. <마케팅 뷰자데>를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강릉을 방문하게 되어서 서점에 '북토크'를 제안했다. 대부분의 경우 서점에서 작가에게 요청을 하지만 나는 반대였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나였기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서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에 적극적으로 제안을 했다. 다행히도 고래책방에서 흔쾌히 수락해 주어서 북토크를 진행하게 되었다.


12월 30일에 북토크가 진행된지라(그리고 내가 유명하지 않은지라) 소수정예로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감사하게도 참여하신 모든 분들이 적극적으로 임해주셔서 1시간 30분이 순식간에 흘렀다. 마무리를 하면서 한 분 한 분의 소감을 듣게 되었는데 참여자 중 한 분이 뜻밖의 인물이었다. 고래책방의 대표님이었다.


그분의 말을 듣다 보니 고래책방이 왜 대형서점이면서 독립서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대표의 단단한 철학이었다. 철학은 단순히 멋진 글자나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서점의 매출 50% 이상을 담당하는 참고서를 매장에서 뺀 것이었다. 물론 주문을 하면 구매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곳에 참고서를 두지 않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고래책방은 늘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이것이 차별화이고 이것이 브랜딩이란 생각을 했다.



<같이 보면 좋은 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497617



사진: Unsplash善哲 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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