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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Nov 01. 2022

나는 가끔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청한다

톱니 효과와 자발적 박탈


한때 나의 최애 음식은 마트에서 파는 초밥이었다.


이마트 초밥 코너. 사진 출처: 매일경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마트가 문 닫기 몇 시간 전부터 초밥을 비롯한 신선식품을 할인해서 판매한다. 마감 직전에는 할인 가격에 다시 할인을 해서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를 하기도 한다. 나는 이 시간을 노려서 초밥을 구매하곤 했다. 한때는 일주일 내내 이렇게 할인된 초밥만 먹을 정도로 나의 마트 초밥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그러던 내가 한순간에 변했다. 일본 여행 중 들른 레스토랑에서 초밥을 먹는 순간 나의 마트 초밥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눈 녹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그리스도 탄생 전(BC: Before Christ)과 탄생 후(AD: Anno Domini)로 나누듯, 나의 초밥에 대한 인식도 일본에서 스시 먹기 전(BS: Before Sushi)과 후(AS: After Sushi)로 나눌 수 있다. 나의 혀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더 이상 마트 초밥을 이전과는 같은 감흥으로 먹을 수 없게 된 거이다. 이른바 톱니 효과라 불리는 현상이다.


톱니 효과 (Ratchet effect)

미국의 경제학자인 듀센베리(James Stemble Duesenberry)는 1949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 〈소득, 저축 및 소비자행태 이론(Income, Saving and the Theory of Consumer Behavior)〉에서 경제주체들의 특이한 행태를 지적했다.

사람들은 소득이 증가할 때 소비를 늘리지만, 반대로 소득이 감소해도 소비를 쉽게 줄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돈벌이가 좋을 때 형성된 소비 습관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져도 고치기 곤란하다는 의미이다.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니, 마치 소비가 습관이라는 톱니장치에 맞물려 있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경제편, 이한영) 중 -


톱니 효과는 나의 경우처럼 일상생활 다양한 부분에 적용이 된다. 에어팟과 같이 음질이 좋은 무선 이어폰을 쓰다 보면 음질이 떨어지는 저가의 유선 이어폰은 꺼려지게 되고, 자동차를 타버릇 하다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더욱 힘들어진다. 이처럼 향상된 무언가에 적응하는 순간, 기존에 잘 즐기던 것이 불편하고 싫어지는 것이다. 한쪽으로 톱니가 돌아가는 순간 뒤로는 다시 못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고통은 상태라기보다는 방향성에 가깝다. '가난한 상태'보다는 '이전보다 더 가난해지는 상황'이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쓴 약을 먹고 나서 사탕을 먹는 것은 괜찮지만 사탕을 먹은 후에 쓴 약을 먹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예방주사를 맞을 필요가 있다. 스토아학파가 주장한 '자발적 박탈'이라는 예방주사를.  


다른 철학 학파와 달리 스토아학파는 부유함에서 연회에 이르기까지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격려했다. 그러나 동시에 즐거움과 편안함에 사로잡히거나 자유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스토아학파가 제안한 전략 중 하나는 즐기는 것 중 일부, 심지어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일시적으로 피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부정적 시각화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의 손실을 상상할 뿐만 아니라, 그걸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 마르코스 바스케스의 <스토아적 삶의 권유>(김유경 옮김, 레드스톤, 2021) 중 -


자발적 박탈은 말 그대로 내가 늘 즐기는 일상의 편리함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여름에 가끔 에어컨을 끄고 습하고 더운 날씨를 그대로 견뎌보고, 때로는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배고픔을 느껴보는 것이다. 이처럼 자발적 박탈을 주기적으로 실천하면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에 대한 고통에 면역력이 생긴다. 이외에도 자발적 박탈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자발적 박탈의 목표는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다. 때때로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을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에 더욱 감사하게 되고, 덜 얽매이게 된다.

자발적 박탈은 자제력을 길러주며, 자제력을 키우면 여러 좋은 점이 있다. 저 초콜릿케이크 한 조각을 먹지 않고 참으면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기쁨을 포기하는 것은 삶에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다.

자발적 박탈은 용기를 길러준다. 또한 그리 자발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의 박탈에 대비해 예방 주사를 놔준다. 지금은 따끔한 고통을 경험하지만 미래의 고통은 훨씬 줄어든다.

-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2021) 중 -


대학생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는 물론이고 기차나 공항역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은커녕 모든 것이 좋고 즐거웠다. 시간이 흘러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여행할 때 주로 호텔에서 잠을 청하곤 했는데 몇 년 전 성수기에 방이 없어서 부득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생 때 그렇게 즐겁게 잠을 청하던 공간이 너무나도 불편한 공간이 되었다. 매트리스는 돌처럼 딱딱하고 위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다른 사람의 코 고는 소리는 잠들 수 없게 만드는 시끄러운 소음이었다. 호텔에 익숙해진 나에게 게스트하우스는 고통 그 자체였다. 초밥뿐만 아니라 숙박에 있어서도 톱니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주기적으로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을 청하면서 자발적 박탈을 실천하고 있다.


이처럼 자발적 박탈을 통해 톱니 효과를 상쇄하는 일, 무엇을 포기함으로 더 큰 무언가를 얻는 일.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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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rcus Lok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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