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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r 17. 2022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하지 않다면?

로고테라피(Logotherapy)

난 한 번만이라도 행보카고 시픈데
왜 나 꽈찌쭈는 햄보칼수가 업서!


NBC <Lost> 중, 영상 출처: 유튜브 한빛비즈


미드 Lost의 꽈찌쭈(놀랍게도 실제 배역 이름은 권진수)의 외침처럼 우리는 왜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하기 힘들까?


나는 그 이유가 '미국 문화' 더 자세히는 '행복을 추구하려는 미국 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밑에서 언급할 빅터 프랭클의 책을 읽고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대부분 미국 문화의 영향권 아래에서 살아왔다. 어렸을 때는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데요(Happily Ever After)'의 디즈니 동화를 보며, 어른이 돼서는 '해피엔딩'으로 가득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 문화를 접할 때 우리는 주로 무엇을 마셨던가? '콜라'라고 불리던 '행복'을 마시지 않았던가!


<Happily Ever After Stories> by Disney Book Group


코카콜라 'Open Happiness' 캠페인



물론 어떤 문화권에 있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미국 문화는 타 문화에 비해 행복에 대한 강조가 유독 두드러진다. 이러한 미국 문화 특징은 독립선언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다음의 세 가지를 보장(양도할 수 없는 권리)한다고 밝히고 있다.


삶(Life), 자유(Liberty), 행복의 추구(The Pursuit of Happiness)



프랑스가 '자유, 평등, 박애'를 강조하듯이 미국은 '삶,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게 뭐가 문제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다만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행위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행복이라는 상태를 우리가 달성해야만 하는 과제로 만들어버린다. 즉 행복을 달성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고 이러한 나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SNS는 꾸며낸 행복들로 가득하게 되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에 질세라 더 열심히 행복을 꾸며내게 된다. 행복에 대한 추구로 인해 진정한 행복은 줄어들고 꾸며낸 행복들만 가득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데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이상한 세상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이 아닌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나는 빅터 프랭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은 본인이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쓴 <죽음의 수용소(Man's Search for Meaning)>라는 책에서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행복은 결과가 아닌 부산물


즉 행복을 추구해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그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개념으로 정리가 된다.


로고테라피는 '의미'라는 뜻의 그리스어 'Logo'와 '치료'라는 뜻의 그리스어 'θεραπεία'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의미 치료'를 의미한다. 로고테라피는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 그리고 그러한 의미를 찾을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친절하게 그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1. 창조적인 일을 하라.

(By creating a work or doing a deed)

2. 새로운 것을 경험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

(By experiencing something or encountering someone)

3.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당신만의 태도를 정해라.

(By the attitude we take toward unavoidable suffering)



행복하고 싶어서 이 글을 클릭한 사람입장에서 나의 답변이 속 시원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즉각적으로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묘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누렸던 중국 한나라의 7대 황제였던 한무제는 이렇게 다.

歡樂極兮哀情多
환락이 극에 달하니 슬픔만이 가득하구나


한무제뿐만 아니라 불교와 주역에서도 공통적으로 언급하듯 행복 속에 불행이 있고, 불행 속에 행복이 있다.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불행해 보이는 상황에서 행복할 수 있고, 행복해 보이는 상황에서 불행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결국 각자의 삶의 의미에 달려있을 것이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brunchbook/kaptop7


Photo: 퍼렐 윌리엄스 <Happy> 앨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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