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패션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 & 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Billionaire Boys Club & Icecream’. 20년 전 퍼렐윌리엄스와 니고가 함께 런칭한 뉴욕 기반의 스트리트 캐주얼웨어로 라인이 다르긴 하지만 정확한 브랜드명은 ‘빌리어네어 보이즈 클럽 & 아이스크림’이다. 지금은 유명세를 얻어 잘 알려져있지만 브랜드 초기만 해도 기억하기 쉽지 않은 이름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BBC’, ‘BBC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 읽기조차 어려운 패션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디토리언 김용석 대표는 네이밍 전략의 키포인트는 ‘있어빌리티’가 아닌 ‘알어빌리티’라고 강조한다.
“너 이름이 뭐니?”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이름 짓기’, 즉 ‘네이밍(Naming)’이다. 자본이 충분한 기업이라면 전문가에게 의뢰할 수 있지만, 1인 기업이나 중소기업의 경우 네이밍에 큰 돈을 쓰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주로 대표가 직접 이름을 짓게 된다.
이때 문제가 발생한다. 애정이 담긴 브랜드의 이름을 짓다 보니 힘이 너무 들어가는 것이다. 멋져 보였으면 좋겠고, 많은 뜻도 담았으면 하는 마음에 결과적으로 이름이 어렵고 길어지기 십상이다. 즉, 고객 입장에서는 이해하기도, 기억하기도 힘든 이름이 되는 것이다.
전략 1. 길고 복잡한 이름은 피하라
몇 년 전, 한 대표님도 비슷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오랜 준비 끝에 서비스를 런칭하기 직전이었지만, 이름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10년 이상 마케팅과 브랜드 컨설팅을 하면서 웬만한 이름의 의미는 유추할 수 있었지만, 그 이름만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표님에게 이름의 의미를 묻자, 장시간에 걸쳐 많은 이야기를 설명해주었다. 이름에 담긴 의미는 많았지만, 자세히 듣지 않으면 그 의미는 물론이고 이름 자체도 쉽게 기억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름이 너무 길고 복잡했던 것이다.
중소기업 브랜드를 보다 보면,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름이 길거나 어렵게 지어진 경우가 많다. 너무 힘이 들어간 것이다. 과거에는 브랜드 이름에 외래어나 숫자를 넣어 무언가 있어 보이는 ‘있어빌리티(있어 보인다 + ability)’가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반면, 너무 쉽고 직관적이면 고객에게 외면받기도 했다. 물론 고급 아파트 ‘브라이튼 N40’ 같이 프리미엄 시장이나 B2B 시장에서는 여전히 무슨 뜻인지 유추하기 어려운 있어 보이는 이름이 유효한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카테고리는 점점 예외적인 경우가 되어가고 있다.
전략 2.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알어빌리티’
요즘 잘 나가는 브랜드의 이름은 ‘쉽고 직관적’이다. 예를 들어, 매일 ‘쿠’폰이 ‘팡’팡 터지는 쇼핑몰 ‘쿠팡’, ‘당’신 ‘근’처의 중고 마켓 ‘당근마켓’(현 당근),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의민족’, 직접 방을 구할 수 있는 ‘직방’처럼 말이다. 이들 모두 5음절 이하의 이름으로 기억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어떤 서비스인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직관적이다. 요즘 네이밍의 핵심은 ‘있어빌리티’가 아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알어빌리티(알어 + ability)’다.
브랜드 이름을 쉽고 직관적으로 짓는 이유는 명확하다. 광고비 절감 때문이다. 광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광고비가 상승하고, 광고 효율도 예전만큼 나오기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쉽고 직관적인’ 이름은 적은 광고비로도 소비자가 쉽게 브랜드 이름을 기억하고 이해하게 만든다. 10번 광고해야 기억될 이름을 3번만으로도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름을 설명해야 할수록 광고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강소기업이라면 더더욱 쉽고 직관적인 이름을 지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략 3. 철수네 장비회사가 ‘파타고니아’가 된 사연
쉽고 직관적인 이름에도 단점은 있다. 바로 확장성에 제한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초반에 고객에게 명확히 인지되고,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그때 고민해도 늦지 않다. 필요에 따라서는 이름을 변경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계적인 가수 BTS도 초반에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쉽고 직관적인 이름을 사용하다가, 일정 궤도에 오른 후에는 ‘BTS’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여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도 마찬가지다. 창업 당시 회사명은 ‘쉬나드 이큅먼트(Chouinard Equipment)’였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철수네 장비회사’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쉽고 직관적인 이름을 통해 초기 충성 고객을 모은 후, 의류 라인을 확장하면서 ‘파타고니아’라는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
파타고니아의 전신, 쉬나드 이큅먼트 광고.- 사진 출처 : https://smhc.co.uk/collection/chouinard-pearabiners/
'있어보이는' 이름이 유독 많은 패션업계에서 직관적인 이름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두 브랜드가 있다. SPA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유니클로와 패션 브랜드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는 무인양품(MUJI)이다. 유니클로는 이름 그대로 'Unique Clothing' 유니크한(독특한) 옷을 의미한다. 무인양품도 마찬가지다. 한자 뜻 그대로 무인(無印) "브랜드가 찍혀 있지 않은", 양품(良品) "좋은 품질의 상품"을 의미한다. 두 브랜드 모두 멋부리지 않고 지향하는 바를 그대로 담은 5음절 이내의 브랜드 이름을 유지 중이다.
1984년 6월 2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첫 번째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현재 유니클로)’ 개장한 모습. 사진출처: 유니클로.
무인양품(MUJU)의 의미. 사진출처: medium
전략 4. ‘3의 법칙’을 활용한 강력한 메시지
만약 이미 어려운 이름을 지었다면, 보완책으로 쉬운 슬로건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름을 기억하기 쉽게 도와주는 슬로건을 통해 문제를 보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견과류 브랜드 ‘HBAF’다. 알파벳만으로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조차 모를 정도로 낯선 이름이지만, “나의 베프, 바프”라는 슬로건을 통해 소비자에게 이름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베프’라는 친숙한 단어를 ‘바프’와 연결 짓고, “h는 묵음이야”라는 설명을 추가하여 소비자가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슬로건을 만들고자 한다면 바프의 “나의 베프, 바프”처럼 세 덩어리로 만드는 것이 좋다. 이를 3의 법칙(Rule of Three)이라고 부른다. 세 덩어리(단어, 문장, 문단 등)로 메시지를 전달하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 때문에, 성공적인 슬로건에서 이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나이키의 “Just Do It”이나 버락 오바마의 선거 캠페인 슬로건 “Yes, We Can”, 서양사에서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인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모두 이 3의 법칙을 따른다.
어려운 브랜드 이름을 슬로건과 위트 있는 설명으로 극복하고 활용한 ‘바프 광고’
인종차별에 반대해온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모델로 한 나이키의 Just Do It 30주년 캠페인 광고. 사진출처: 나이키
오늘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브랜드 네이밍은 단순히 멋져 보이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쉽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광고비 절감과 소비자 인지 속도 때문이다. 하지만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단점도 있으니, 초기에는 직관적인 이름으로 시작하고 궤도에 오른 후 확장성을 고민할 수 있다. 만약 이미 어려운 이름을 사용 중이라면, 기억하기 쉬운 슬로건을 통해 보완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3의 법칙을 활용해 짧고 강력한 메시지로 소비자의 기억 속에 각인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요즘 브랜드 네이밍의 핵심은 ‘알어빌리티’다. 고객이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 성공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