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여간 부산섬유패션산업연합회가 주관하는 프로젝트에서 패션 브랜드 컨설팅을 맡았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밀도 높게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의 결과물을 도출해야 했기에, 부산에 가서도 맛집이나 명소를 방문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설팅 사이사이에 생긴 찰나의 시간에 부산 시민들이 추천하는 맛집이나 핫플을 찾아가곤 했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영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방문한 여러 장소에서 소소한 영감을 받았는데, 그중 폭풍우처럼 영감을 쏟아내린 곳이 있었다. 바로 ’베르크(Werk)’라는 카페였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을 ‘부산시 베를린 카페’라고 표현하고 싶다. 컨셉의 일관성과 높은 수준의 구현력에서 오는 매력이, 요즘 말로 ‘킥’이었다.
이곳에서 느낀 세 가지 포인트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1. 이름을 구현하다
브랜드의 이름은 일종의 ‘브랜드의 약속’이다. 이는 소비자에게 “우리는 이런 존재입니다” 혹은 “우리는 이런 것을 제공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베르크’라는 이름은 어떤 약속을 하고 있을까?
베르크는 독일어로 ‘일’을 의미하는 ‘Werk’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베르크는 두 가지 약속을 하고 있다.
1) 우리는 독일풍 카페입니다.
2) 우리는 ’일(work)’이라는 주제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독일풍’은 노골적인 방식이 아닌, 공간 곳곳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장식보다는 기능’, ‘군더더기를 최소화한 미니멀리즘’이 카페 전반에 녹아 있었다. 브라운 시계 등 카페 곳곳의 물품과 가구 또한 바우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베르크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바우하우스의 소문자 운동을 모티프로 한 소문자 표기를 사용하며 그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2. 동선을 늘려 컨셉의 밀도를 높이다
가성비 가게와 프리미엄 가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가격’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가격’을 공간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단순히 비싼 가구들로 공간을 채운다고 해서 프리미엄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핵심은 ‘동선’에 있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은 고객 동선을 최소화해야 한다. 들어가자마자 주문하고, 바로 음식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반면, 프리미엄 가게는 동선을 늘려야 한다. 공간을 단순히 지나치는 곳이 아니라, 박물관처럼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베르크는 이 원칙을 철저히 구현하고 있었다. 1층은 주문을 위한 공간이었다. 카페에서 머물고 싶은 고객은 건물 밖으로 나가 옆 건물 입구로 들어가야 했다. 처음 방문한 사람으로서, 2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공간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감을 느꼈다. 예상대로, 베르크의 2층은 베를린의 카페 혹은 공유 오피스를 연상케 하는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짧은 동선은 '효율'을, 긴 동선은 '효과'를 나타냄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3. 유휴 공간을 전시장으로 만들다
베르크는 1층에서 주문하고, 2층에서 음료를 즐기는 구조였다. 이 과정에서 계단 공간을 단순히 이동 통로로 두지 않고,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4층 즈음에는 고객이 자신의 프로젝트나 사업을 홍보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1.6층 즈음에는 베르크의 소소한 굿즈(스티커, 엽서 등)가 놓여 있었다.
특히, 배전함과 같은 디자인 통일성을 해칠 수 있는 요소에는 와이파이 공지 스티커를 붙여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고객 편의성을 높였다. 이러한 유휴 공간 활용 덕분에 베르크는 매장 내부를 넓고 쾌적하게 유지하며, ‘일하기 좋은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베르크는 단순 카페 이상의 경험을 제공했다. 브랜드의 약속을 공간과 운영 방식을 통해 충실히 구현하며, 부산에서 독일, 더 좁게는 베를린의 감성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베르크의 세 가지 포인트는 오프라인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운영하는 모든이에게 실용적인 인사이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