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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프레임, 책이라는 메타프레임

by 캡선생

대부분의 책은 제목을 통해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퀴브라 귀미샤이의 <언어와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에서 언어와 존재를 동일선상에 두며, 언어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부제인 "언어는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만들고 처세와 정치를 결정하는가?"는 책의 주제를 더욱 친절하게 풀어준다.


책에서 저자는 언어를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이 점에 대해 많은 독자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프레임의 생성 및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프레임에 대한 프레임, 즉 메타프레임은 읽는 내내 나에게 의문을 남겼다. 데이비드 흄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사실과 당위를 모호하게 섞어 논리와 감정, 경험을 종종 혼란스럽게 넘나든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책이 제시한 메타프레임을 벗어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읽어야 했다.


언어에 대한 나의 메타프레임은 이렇다. 나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며, 영어로는 통번역이 가능하며, 중국어로는 생존가능하다. 흥미로운 점은 외국어 학습이 한국어에 대한 이해를 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어는 나를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국어를 조망하게 했고, 중국어는 한자문화권의 맥락을 통해 한국어의 뿌리를 더 깊이 탐구하게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한국어, 더 나아가 언어라는 프레임에 대한 나만의 메타프레임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나는 롤랑 바르트의 언어 개념에 공감한다. 그는 언어를 랑그(langue), 에크리튀르(ecriture), 스틸(style)로 나누었다. 랑그는 모국어로,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언어의 기본 틀이다. 에크리튀르는 상황에 따른 언어 사용 방식으로, 집단의 규칙에 맞춰야 인정받는 언어의 사회적 틀이다. 10대는 10대만의 언어가 있고, 래퍼는 래퍼만의 언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스틸은 개인적 언어 습관으로, 개개인의 독창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누군가를 성대모사한다는 것은 바로 이 스틸(style)을 스틸(steal)하는 행위다. 바르트의 분류는 최소한의 감정 개입으로 언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신뢰를 준다.


이 책은 언어라는 프레임을 다시금 이해하도록 자극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책의 메타프레임을 벗어나사 사고하려는 내 노력은 글에 혼란스러움을 남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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