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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May 10. 2022

까는 글은 쓰지 말자

글쓰기의 원칙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바로 "최대한 까는 글은 쓰지 말자"이다.


1일 1글을 쓰다 보니(쓴다기보다는 쏟아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타인을 까는 뉘앙스의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대한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비난이 아닌 건전한 비판까지 피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비판과 비난은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 결정다고 생각하기에 내가 쉽사리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비판과 비난의 사전적 정의를 네이버 국어사전을 통해 살펴보자.

비판(批判)
: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비난(非難)
: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비판과 비난은 모두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행위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비난은 그것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한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 '책잡아서 나쁘게'라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라서 말하는 사람은 좋은 의도로 이야기해도 듣는 사람은 '책잡아서 나쁘게'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과 비난은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이 정의하는 영역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글을 쓰는 내가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세상의 잘못된 점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면 그것이 좋은 세상이냐?


이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비판(혹은 비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세상에 부족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칭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까지 굳이 비판의 글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까는 글을 쓰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때문이다.


1. 내가 틀릴 수 있다.


타인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즉 "내가 틀릴 수는 없다"라는 강한 확신 말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 알고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심지어 정보가 부족한 타인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말이다.


더 안타까운 일은 타인을 까고 나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진지한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오히려 내가 틀린 생각을 하게 만든 '언론' 혹은 다른 누군가를 다시 까는데 열을 올리는 경향성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즉 까는 것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래 봤었기 때문에 최대한 이러한 악순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상기하면서.


2. 나도 그렇지는 않은가?


타인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나도 그렇지는 않은가?"를 생각해본다.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타인의 모습이 나에게도 그대로 있을 수 있고 나와 '다른' 타인이 '틀린' 것처럼 보이듯 그 사람의 눈에도 내가 틀린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언뜻 이타적으로 보이는 이 생각은 사실 꽤나 이기적인 행동이다. 남을 비판하기보다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나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타인을 거울삼아 나를 돌아보는 행위를 통해 오롯이 '나'를 위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이기심은 최대한 즐기고 싶다.



쓰고 보니 이 글도 타인을 까는 듯한 뉘앙스가 다소 느껴지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쩔 수 없다. 나라는 존재는 불완전한지라 끊임없이 반성하고 수정해나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마치면서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까는 글은 쓰지 말자. 최대한!



Photo by Gleb Albovsk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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