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최근에 코딩 공부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코딩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본업으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파이썬(Python: 네덜란드 개발자가 만든 프로그래밍 언어)에 관심이 생겨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부업으로 혹은 N잡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 재미로 코딩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의 밝은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는 몇 년 후 억대 연봉을 받고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코딩 공부를 한 것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본업이 아닌 영역에서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직 협상에 도움을 준 것 같다고 친구는 말했다.
나는 이와 유사한 경우를 많이 봐왔고 나 스스로도 경험을 했다.
퇴사하고 1년 정도 '갭이어(Gap Year)'를 갖었던 적이 있다. 사실 말이 좋아서 갭이어지 그냥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살았다. 이 1년 동안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했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철학과 물리학(주로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양자역학)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었고, 독서모임과 같은 다양한 소셜 모임에도 참석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모임에서 모임장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이때는 돈도 받지 않고 진행을 했다)
나에게 1년의 갭이어는 돈이 되지 않는 일들로 가득 채운 그런 한 해였다.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때의 경험이 추후에 나에게 돈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갭이어 이후 브랜드 컨설팅 및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아는 분과 함께 창업하게 되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경쟁 PT를 하게 되었는데 갭이어 동안 공부한 철학과 물리학의 지식들이 우리 회사의 제안서 및 PT를 차별화해주었고 그로 인해 많은 비딩을 따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내부 미팅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대학 및 다양한 곳들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추가적으로 주어졌다. 즉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 잇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앞날을 내다보며 점을 이어나갈 수는 없다. 다만, 살아온 나날을 뒤돌아 보았을 때에 비로소 그 점들을 이어볼 수 있다. 미래에 여러분의 점들이 어떻게든 연결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 스티브 잡스 -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모든 경험은 후에 가치 있게 연결이 될 수 있다. 다만 돈이 되지 않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연결이 될 확률이 높은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1. 빠른 시간 내에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돈이 되는 일들은 그 장밋빛 미래에 비례하여 경쟁이 심해진다. 그리고 돈이 되는 지식은 모두가 공부하여 금세 모두가 알게 되는 상식이 되어 1~2년 정도 공부한다고 나만의 경쟁력을 갖기는 힘들다. 지식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경향성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성인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을 점점 더 기피한다. 교양 차원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말을 해도 그게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 반문을 한다. 즉 내가 투여하는 인풋과 발생하는 아웃풋의 시차가 나는 지식에 대한 외면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여기에 기회가 생긴다.
돈이 되지 않는 지식과 활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곳의 경쟁률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즉 이러한 분야에 조금만 시간을 써도 손쉽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나만의 경쟁력이 된다. 더 나아가 트렌드의 변화로 이러한 영역이 갑자기 돈이 되는 영역으로 바뀌게 된다면 그것으로 인한 이득은 내가 들인 시간의 수십 배 이상은 될 것이다.
2. 본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앞서 말한 내 친구의 경우 사람들이 돈이 될 거라고 예상하는 코딩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1번에서 말한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통해 자신감과 삶의 활력을 얻었고 이는 직간접적으로 본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퇴근 후에도 나의 흥미와는 상관없이 돈이 되는 일에 열중하는 것은 노동의 연장이지만 돈이 되든 안되든 나의 흥미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은 휴식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되지 않음에도 하는 활동은 분명히 당신의 삶에 활력이 될 것이고 이는 본업에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이는 부캐 열풍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캐는 슬럼프지만 부캐는 잘하고 있으니까!"와 같은 정신적 버팀목이 당신의 본업도 잘 지탱해줄 테니 말이다.
돈은 수단이다. 돈을 버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일단 돈을 벌고 나중에 그것으로 내가 무엇을 할지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그렇게 돈만 있다고 뚝딱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돈을 버는 노력만큼이나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또 그에 따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버는 행위를 함과 동시에 돈이 되지는 않지만 나에게 흥미를 주는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후에 나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점들을 연결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돈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하다 보면 주위에서 "그런 거 뭐하려고 하냐?"라는 핀잔을 듣곤 한다. 나 또한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와 주위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에 그런 핀잔을 들으면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이야기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