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인지 아니면 중학교 때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며 말씀을 하셨다.
사진 출처: Medium.com
이 컵을 보고 누군가는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누군가는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
'물이 반이 차 있는 컵'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이 늘 그러하듯 선생님도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라는 교훈을 전하셨다. 그런데 남들이 모두 yes라고 할 때 no라고 생각하는 기질이 어렸을 때부터 있어서인지 나는 그 당시에도 이 말에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 무엇인가 불편한 지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만의 답을 찾게 되었다.
물을 반이나 더 채울 수 있겠네
물 반 컵을 보고 '물이 반밖에 없네'와 '물이 반이나 있네'라는 생각은 관객의 시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주어진 현상에 대해서 평가만 하고 그것에 대해 참여할 생각을 못하는 그러한 시각 말이다. 그런데 '물을 반이나 더 채울 수 있겠네'와 '물을 반이나 버릴 수 있겠네'와 같은 참여자의 시각도 있다. 즉 주어진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시각 말이다.
간단하게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함이라 엄밀한 분류는 아니다)
1. 물이 반이나 있네 (긍정 + 수동)
2. 물이 반밖에 없네 (부정 + 수동)
3. 물을 반이나 더 채울 수 있겠네 (긍정 + 능동)
4. 물을 반이나 더 버릴 수 있겠네 (부정 + 능동)
물 반 컵에 대한 시각은 삶에 대한 시각과도 맞닿아 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때로는 나의 의지와 바람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곤 한다. 간절히 바라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루어지지 않고 전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손쉽게 얻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때 그러한 일들을 단순히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넘어가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로 활용하려는 것이 나의 삶에 대한 시각이 된 것이다.
사람마다 물 반 컵을 보는 시각은 다양할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의 시각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있는 그대로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물 반 컵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국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어떠한 관점으로 물 반 컵을 바라보는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