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대신 화려한 손가락을 보게 만드는 책

by 캡선생

한때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자기계발서로 꼽히던 책이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다. 이 책을 읽고 본인이 원하는 성공한 사람, 대체로는 부자의 아비투스를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는 식의 부연설명도 자주 따라붙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생긴다. 저자가 끌어온 아비투스라는 개념은 원래 피에르 부르디외에게서 온 것인데, 이것은 흔히 말하는 자기계발의 문법과는 결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는 개인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익힌 성향과 감각에 가깝다. 단순히 마음먹고 습관 몇 개를 바꾸면 곧장 획득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을 얻으려 애쓸수록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자기계발은 대체로 후천적 노력과 의지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긴장이 발생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한편으로는 계층, 환경, 문화자본이 사람의 취향과 태도에 얼마나 깊게 스며드는지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학습과 훈련으로 어느 정도 획득할 수 있는 것처럼 제시한다. 이 대목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구조적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여기에 일종의 견지망월이 작동했다고 본다.


견지망월은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사람들이 달이 아니라 손가락을 본다는 뜻이다. 보통은 본질을 놓치고 겉모습에 끌리는 우매함을 말할 때 쓰인다. 그런데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사람들이 단지 본질을 몰라서가 아니라, 손가락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시선을 빼앗겼다면, 달을 가리킨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아비투스》는 바로 이 점이 긍정적으로 작동한 사례에 가깝지 않나 싶다. 원래 개념이 가리키는 사회 구조의 문제보다, 그 개념이 풍기는 세련된 성공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소비된 것이다.


예전에 프랑스 상류층과 한국 상류층을 비교하는 이미지가 인터넷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한국의 상류층은 단지 돈이 많은 사람처럼 묘사되고, 프랑스의 상류층은 돈뿐 아니라 승마나 바이올린 같은 취미와 예술적 감각까지 갖춘 사람처럼 그려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한국 사회의 배금주의를 개탄하는 용도로 그 이미지를 사용하곤 했다. 하지만 이 구도는 보기보다 훨씬 복잡하다. 만약 단순히 돈만으로 계층을 가른다면, 극단적으로는 로또나 도박과 같은 수단으로 큰돈을 번 사람도 비교적 빠르게 계층 사다리를 오를 수도 있다. 반면 문화자본이 깊게 작동하는 사회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돈만으로는 쉽게 넘어설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기기 때문이다. 취향, 언어, 교육, 관계 맺는 방식 같은 요소는 한 세대 만에 완전히 획득되기 어렵다. 자수성가 한 사람이라면 손자 대에 이르러 획득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 책에서 말하는 아비투스의 배경에는 계층 이동의 경직성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달은 어쩌면 그 구조 자체다. 그런데 독자들은 그 구조를 읽기보다, 상류층으로 이동하기 위한 자기계발의 힌트에 더 눈길을 준다. 돈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과 취향까지 이야기하니 더 고급스러운 성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워낙 매력적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충분히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좋다고 여기거나, 높다고 여기는 인간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꽤 직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책의 구조적 모순조차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진다. 모임에서는 이 긴장을 어떻게 읽을지,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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