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캡선생 May 23. 2022

여행이 소리가 될 때

맥락 기억(Contextual Memory)

 '비자의적 기억(involuntary memory)'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그려냈다.


왼쪽: 마르셀 프루스트 / 오른쪽: 마들렌. 사진출처: Culture.pl


이처럼 오감으로 접한 정보(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를 통해 특정한 기억을 떠올린 경험이 대부분 있을 것이다. 일명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로 알려진 이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인간의 기억이 컴퓨터와는 다르게 맥락 중심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맥락 기억이라고 부른다.


컴퓨터의 데이터 뱅크에 있는 모든 항목은 고유한 위치 또는 '주소'를 가지고 있다. 가히 '우편번호 기억(postal-code memory)'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체계에서는 특정 기억을 인출하려면 그냥 해당 주소를 찾아가면 된다. 우편번호 기억 대신에 우리는 일종의 '맥락 기억(contextual memory)'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기 위하여 맥락이나 단서를 사용한다.

때로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방해가 되기도 하는 맥락의 강력한 효과는 기억의 출력 펌프를 '예비(priming)'하는 일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의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간호사'라는 단어를 재인(recognize)하기가 쉬워진다.

- <클루지> 중 -


우리가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은 여행을 시각정보로 남기기 위함이다. 언제라도 그 여행을 추억할 수 있게 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맥락 기억은 오감이 모두 활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진'과 같은 시각적인 정보로만 추억할 필요는 없다.   


한 모임에서 만난 분은 여행을 향기로 추억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행지마다 다른 향수를 가지고 가서 동일 여행지에서는 동일 향수만 뿌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해당 향수를 전혀 쓰지 않고 여행지를 추억할 때만 냄새를 맡아본다고 했다. 즉 그녀에게 여행은 향기로 남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음식을 통해 미각으로 혹은 만질 수 있는 물건을 통해 촉각으로 여행을 추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청각으로 추억한다.


내가 여행을 소리로 추억하게 된 계기는 우연에 의해서였다. 나는 한 음악에 꽂히면 그것만 하루 종일 듣는 편인데 방콕 여행을 가기 직전에 한 노래에 꽂히게 되었다. 구름의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이라는 노래에.  

<Cloud. 2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앨범 표지


방콕 여행 내내 어디를 가든 이 노래만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한국에 돌아올 때쯤에는 약간은 질려서 한동안 듣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는데, 방콕 여행의 모든 추억이 생생하게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의 조명, 온도, 습도...(여름이었다)


이 경험 이후로 내가 정말 추억하고 싶은 도시로 여행을 갈 때면 의도적으로 가장 어울리는 노래 한 곡만 질리도록 듣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나에게 여행은 소리가 되었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의 여행은 어떠한 감각으로 남아 있는가?



p.s. TMI로 내가 여행지와 노래를 강력하게 연결해놓은 리스트를 일부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방콕 -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by 구름

도쿄 - <APP(Feat. Loopy> by 키드밀리

삿포로 - <바라봐줘요> by 죠지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kap/115



Photo by Tom Barrett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수천 년간 통하고 있는 슬로건의 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