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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n 01. 2022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다?

진실(眞實)

당신은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는 진실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떠한 개념을 정확하게 수 없을 때 그것이 아닌 것을 하나씩 제거하면서 정의에 도달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비아 네가티바다.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
: 무언가를 묘사할 때 그것이 아닌 것을 말하면서 묘사하는 방식이다. 특히 신 혹은 궁극적 실재와 같은 것을 묘사할 때 유한한 속성이나 특징을 활용해서 묘사하는 것을 부정하는데 활용이 된다.

- Oxford Languages 중 -
* 본인이 번역


그러면 비아 네가티바를 활용해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가 보고자 한다.



1. 진실은 거짓의 반대말이 아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짓의 반대말이 진실이지요"라고 답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참여한 다양한 철학 모임에서도 대부분 이렇게 정의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목장 주인이 두 명의 하인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을 했다. "너희들은 목장에 가서 지금 양이 몇 마리 있는지 확인해보아라."

두 명의 하인 중 한 명이 동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당신 일이 힘들었을 테니 내가 혼자 가서 확인하고 알려주리다." 그리고 그는 목장에 가서 양의 숫자를 확인해보았고 양은 6마리만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동료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동료에게 7마리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본인은 주인에게 6마리가 있다고 따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주인에게 꾸지람을 듣고 동료는 칭찬을 듣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가 보지 못했던 곳에 양 한 마리가 숨어 있어서 실제로는 7마리의 양이 있었던 것이었다.


위 이야기처럼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그리 드문 경우가 아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다양한 이유로 거짓과 진실을 오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이다.


2. 진실은 선(善)이 아니다


진실과 관련해서 또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진실은 선하다"라는 것이다. 진실이 선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맥락인 것 같다. 나는 이것이 꽤나 위험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실이 선이라면 선이 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진선미(善美)를 구분하지 못할 때 얼마나 많은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름다운 외모의 사람은 착하다"라는 선과 미를 동일시하는 선입견이 강했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못생긴 외모의 사람은 악하다"가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자의 얼굴이 못생겼으면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이 나오고 반대로 아름답다면 "그럴 리가 없다.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라는 터무니없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얼짱강도 이미혜. 사진 출처: tfmedia.co.kr


선과 미를 동일시하는 경향성은 대중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옅어지고 있지만, 진과 선을 동일시하는 경향성은 아직까지 여전한 것 같다. 이 둘을 구분해서 보는 것은 조금 더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예시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영화 <어벤저스>에서 나온 막강한 빌런인 '타노스'는 우주 생명체의 절반이 없어져야만 우주는 더 행복한 곳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영화상에서 전지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을 '진실'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것이 '선'한 행동인가? 아마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의 타노스. 사진 출처:smithsonianmag.con


'진리'를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본인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대중에게 '진리'라고 설파하는 선동가들이다. 이것의 위험성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히틀러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3. 진실은 Truth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진실이 영어로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대부분 'Truth"라고 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도 정확히 맞는 말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 장하석 교수가 정리를 잘해놓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공유하고자 한다.

진상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형편'이다.

진상은 '진리'와 다르고, '사실'에 더 가깝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그것을 규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서 시작해야 이상적입니다. 그 반면 관측 범위를 넘어서는 진리를 말해줄 수 있는 탐지기나 측정방법이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진상도 진리도 아닌 '진실'이라는 개념도 있지요. '진실'은 광범위한 의미로 쓰이지만, 특히 사람의 곧고 정직함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법정에 나온 증인에게서(아니면 애인에게서) 진실을 원합니다. 진리는 그런 데서 나올 내용은 아닙니다.

'참'에도 적어도 이렇게 세 가지의 중요한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그 의미를 어느 정도라도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1) 진상, 2) 진실, 3) 진리라는 세 가지의 다른 단어가 있습니다. 전부 한문 '참 진(真)'자를 앞에 둔 후 어떤 참이냐를 구분해주는데, 참 훌륭합니다. 영어에는 이렇게 세분된 단어가 없고 다 뭉뚱그려서 'truth'라고 합니다.

-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중 -


지금까지 무엇이 진실이 아닌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나는 모르기 때문에 체념하기보다는 그렇기 때문에 질문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라
- 볼테르 -



Photo by Michael Carrut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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