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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Feb 27. 2022

굴렁쇠 소년이 들려준 아름다운 정적

故이어령을 기리며

'한국형 발라드'라는 장르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는 성시경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튜브 Dingo 'Killing Voice'


발라드는 결국 그 마지막 읊조림을 위한 거예요.


그의 말처럼 발라드에서 우리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드는 것은 전주의 첫 소절도, 클라이맥스의 고음도 아닌 마지막 그 읊조림이다. 발라드의 그 모든 것은 결국 그 마지막 읊조림의 울림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노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순간이 죽음 아니던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궤적이 결국 죽음이라는 마지막 읊조림으로 귀결되고 우리의 삶은 그렇게 가장 큰 울림을 세상에 던지고 마무리된다.


이러한 마지막 읊조림을 전 세계인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준 사람이 바로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다. 1988 서울 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을 통해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88 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에 대해 설명했다.

"(88 올림픽 때 굴렁쇠 소년이 반바지를 입고 굴렁쇠를 굴리며 갈 때, 사이렌이 울렸는데) 그 제목이 Silence였지. 내가 올림픽에서 수십 억 지구인들에게 들려준 것도 바로 그 침묵의 소리야. 꽹과리 치고 수천 명이 돌아다니던 운동장에 모든 소리가 딱 끊어지고 어린애 하나가 나올 때, 사람들은 듣고 본거야. 귀가 멍멍한 침묵과 휑뎅그레한 빈 광장을..... 그게 얼마나 강력한 이미지였으면, 그 많은 돈 들여서 한 공연은 소년이 굴리던 굴렁쇠만 기억들을 하겠나. 그게 어린 시절 미나리꽝에서 돌 던지며 듣던 정적에서 나온 이미지라네."
"우리가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도 바로 그런 거라네. 시끄럽게 뛰어다니고 바쁘게 무리 지어 다니다 어느 순간 딱 필름이 끊기듯 정지되는 순간, 죽음을 느끼는 거야. 정적이 바로 작은 죽음이지. 우리가 매일 자는 잠도 작은 죽임이거든. 우리가 침묵의 소리를 들을 때, 그걸 잡아채야 해."


이어령 교수는 죽음을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도 비유했었는데, 안타깝게도 26일 그도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제 우리는 그의 메시지에 더해 그의 죽음까지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전한 마지막 읊조림까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Photo: KBS 유튜브 '같이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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