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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선생 Jul 20. 2022

신념이 폭력이 되지 않도록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은 없다. 내가 틀릴 수도 있기 때문에.


학창 시절에 이 말을 들었으면 아마도 나는 버트런드 러셀을 비겁한 사람으로 보았을 것 같다. 위대한 인물들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그들은 대부분 신념을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었고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에 큰 영향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한 가지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영웅들 뿐만이 아니라 악당들도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꾼 사람뿐만 아니라 나쁜 쪽으로 바꾼 사람도 본인만의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좋고 나쁨은 결과론적이며 주관적인 이야기다)


이것은 비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는 유명인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자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0대 때 갖고 있었던 신념 중 성숙해지고 나서 터무니없이 느껴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잘못된 신념 때문에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신념은 또 얼마나 빠르게 전파되고 전염되는가?


신념은 좋게 작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칼이지만 나쁘게 작용하면 사람을 죽이는 칼이되기도 한다. 그래서 코미디언 이경규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 같다.

사진 출처: KBS2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나는  말에 한 가지를 더 붙이고 싶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무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심지어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소크라테스조차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신념이 무엇보다 무서운 이유는 누가 봐도 명백하게 틀린 것으로 판명이 나도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기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우리의 신념 간에 또는 신념과 실제로 보는 것 간에 불일치나 비일관성이 있을 때 생기는 것으로, 인지 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개인이 믿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 간의 차이가 불편하듯이 인지 간의 불일치가 불편하므로 사람들은 이 불일치를 제거하려 한다. 인지 부조화 이론에서 나온 결과 중 하나는 자신의 태도(나는 따분한 일은 좋아하지 않아)와 일치하지 않는 과제(많은 보수를 받고 무엇인가 따분한 일을 하기)에 참여하면 태도가 행동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는 불일치에서 생긴 ‘부조화 압력’ (그 과제가 정말로 그렇게 따분하지는 않아) 때문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중 -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나의 신념을 세상에 맞추는 것이 아닌 세상을 내 신념에 맞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2000년을 앞두고 지구 멸망을 이야기했던 종교단체들이다.



다미선교회가 종말일로 이야기한 1992년 10월 28일 당일 KBS 생방송. 출처: 중부일보


2000년을 앞두고 다양한 종교단체(사이비로 칭해지는)들이 종말론을 이야기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성경 해석, 신의 계시 등의 내용을 근거로 종말이 올 것임을 확신에 찬 태도로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종말론을 이야기하는 단체들은 주장하는 것이 비슷했다.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기도하는 자만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지금 보면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러한 주장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혹이 되었고 이것은 빠르게 집단 신념이 되어갔다. 그리고 각 단체들이 말한 종말 예정일이 다가오자 이것을 전혀 믿지 않던 사람들조차 "혹시 진짜 종말이 오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그날이 왔다. 공중파 방송들은 앞다투어 생방송으로 현장 소식을 전했다. 수많은 취재 열기와 신도들의 신념이 무색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자 한 신도가 "드디어 종말이 오고 있다"라고 말하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본인의 신념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이자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굳건한 신념에 매몰된 이들은 인지부조화를 겪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며 세상을 본인들의 신념에 맞추기 시작했다


멸망해야 할 세상이 우리의 기도 덕분에 구원받았다!


제삼자가 보았을 때는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지만 신념이라는 것은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본인의 목숨조차 바칠 수 있는 진리이자 현실이다. 그래서 잘못된 신념의 강도가 커질수록 그리고 그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 폭력의 크기는 모든 생명체를 앗아갈 수도 있는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폭력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이 폭력이 되지 않도록 다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내가 그리고 나의 신념이 틀릴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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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runchbook/kap11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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